모든 아침은 저녁보다 지혜롭다


 "잠자리에 들 시간이다"
 야곱이 요나에게 말했다.
 아이는 야곱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느릿느릿 움직였다.
 "내가 하는 말 들었니?"
 "들었어요."
 요나가 말했다.
 "제가 말을 안 들으면 화가 나지요?"
 "나는 내가 얼마나 많이 나 자신의 말을 듣지 않았는가를
생각하려고 한단다."
 "저는 당신이 언제나 지혜로운 말만 하는 것이 피곤해요."
 "넌 그냥 피곤한 거야."
 "전 당신 때문에 피곤해요."
 "나도 때로 나 자신 때문에 피곤하단다."
 "그럼 왜 모든 사람의 질문에 대답하는 일을 그만 두지 않는
거죠?"
 "그 질문에 대답부터 하란 말이냐?"
 "야곱."
 "왜?"
 "당신 때문에 전 지쳤어요."
 "너를 지치게 만드는 것은 바로 너 자신이야."
 "그럼 제가 어떻게 하면 좋겠어요?"
 "어서 자거라, 모든 아침은 저녁보다 지혜로운 법이니까."


시간은 새로운 것을 창조하기보다는 이미 있는 것을 드러내 보일 뿐


 야곱과 요나, 그리고 마을을 가로지르는 강가에 사는 모든
이들에게 몇 해가 흘러갔다.
 야곱은 아직 침대에 누운 채로 세상이 자기 밑에서 돌아가고
있음을 느꼈다. 지금은 그다지 늙지 않았지만, 얼마 후에는 곧
늙으리라고 야곱은 생각했다. 눈을 감은 채로 야곱은 천천히
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삶의 무게도 나이도 잊은 채로, 늘
하듯이 기도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얼마 후 야곱은 얼굴에 와 닿는 아침의 첫 햇살을 느끼고
눈을 떴다. 창문 너머로 새벽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요나가 방으로 들어와 가볍게 야곱의 어깨를 흔들었다.
야곱은 자기 위에 놓은 손이 이제는 연약한 어린아이의 손이
아님을 느낄 수 있었다.
 요나가 웃으며 말했다.
 "절 기억하시겠어요? 제가 어제 도착한 바로 그 어린
소년입니다."
 "누가 그렇게 오래 전 일을 기억할 수 있겠니?"
 야곱도 농담을 했다.
 요나가 더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언젠가 빵장수 야곱에서 '현재란 미래의 추억'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아침을 먹기 전, 식탁에서 빵을 들어 축복의 기도를 올린
것은 요나였다.
 "루스 선생님이 제게 어린 학생들 가르치는 것을 도와 달라고
하셨어요."
 요나가 말했다.
 "그랬군. 그 아이들에게 뭘 가르칠 거지?"
 야곱이 물었다.
 "배우는 것은 듣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고요."
 그때 작지만 분명하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 요나의 말이
중단되었다. 두 사람 다 별로 놀라지 않았다. 요나가 얼른 가서
문을 열고 루스 선생을 맞아들였다. 야곱이 일어나 자기 옆의
의자를 권했다.
 친근감을 나타내며 루스가 손을 야곱의 손 위에 얹었다.
 "저는 추운데, 당신은 따뜻하군요."
 "당신은 추울때에도 늘 따뜻하지요."
 야곱이 말했다.
 "고마워요, 야곱."
 루스가 손을 거두며 말했다.
 "친절함은 지혜로움보다 더 따뜻하지요."
 루스가 코트를 벗는 것을 요나가 도왔다. 코트를 벽난로
가까이에 걸어 놓으면서 요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야곱과
루스가 다정하게 앉아 아침 차를 따르고 있었다.
 사랑이란 마술과 같군, 하고 요나는 생각했다. 하나와 하나를
큰 하나로 만들어 놓으니까.


야곱의 사다리


 한밤중에 많은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서너 시간이 지나자
낡은 지붕에서 비가 새기 시작했다.
 "야곱, 제가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서 새는 곳을 고치겠어요."
 요나가 말했다.
 "내가 사다리를 붙잡아 주마."
 야곱은 그렇게 말하고 요나를 따라 집 밖으로 나왔다.
 두 사람이 밖으로 나왔을 때는 폭풍이 멎고 있었다. 빠른
속도로 흘러가는 구름의 틈에서 밝은 달이 내다보였다. 요나가
사다리를 오르는 동안 야곱은 사다리 밑둥을 붙잡고 있었다.
 사다리 꼭대기까지 오르자 요나는 곧 지붕 위로 사라졌다.
야곱은 이제나저제나 요나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사다리
아래 서 있었다.
 "괜찮으냐?"
 야곱이 소리쳤다.
 "네, 이젠 비가 다시 와도 지붕이 새지 않을 거에요."
 요나가 말했다.
 잠시 후 요나가 지붕 가장자리로 모습을 내밀었다.
 "이곳에 올라오니까 풍경이 기가 막힌데요."
 "보는 위치가 아니라 보는 사람에 따라서 풍경이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지."
 그렇게 말하면서 야곱은 사다리에 발을 올려놓았다.
 "거기 있거라, 나도 올라가마."
 "조심하세요."
 요나가 소리쳤다.
 한 단 한 단 조심스럽게 발을 디디며 야곱은 사다리를 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꼭대기에서 멈추었다.
 요나는 지붕 위에 자리잡고 앉아 빠른 속도로 맑아져 가는
하늘을 올라다보고 있었다.
 "마치 별들이 비에 씻기운 것 같아요."
 "어쩌면 그것이 하느님이 세상을 씻는 방법인지도 모르지."
 야곱이 말했다.
 "성경 속의 야곱이, 하늘에서 내려온 사다리에 천사들이
오르내리는 걸 본 날 밤이 바로 이런 밤이었을까요?"
 요나가 물었다.
 "똑같은 하늘이지."
 "제 생각에는 성경 속의 야곱이 그때 광야에 있었다는 것만
달랐을 것 같아요."
 요나가 말했다.
 "때로 사람들 속에 있을 때 우리는 자신이 혼자이고, 마치
광야에 홀로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
 야곱이 말했다.
 "그래요."
 요나가 말했다.
 "하지만 그때 야곱은 정말로 혼자였어요."
 "혼자라고 생각했을 따름이지."
 "천사들이 함께 있었으니까요?"
 "아니, 그는 하느님과 함께 있었으니까. 천사들은 메시지를
전하는 이들이었고."
 "무슨 메시지를 전했을까요?'
 "하늘과 땅 사이에 사다리가 있다는 메시지이지."
 야곱이 사다리를 내려오기 시작했다. 요나는 잠시 지붕 위에
있다가 사다리로 다가왔다. 반쯤 내려왔을 때 두 사람은 멈춰
서서 하늘을 쳐다보았다. 달빛이 그들 위로 하얗게 쏟아지고
있었다.
 "천사는요? 천사는 어디에 있나요?"
 별들에게로 눈길을 주며 요나가 물었다.
 야곱이 말했다.
 "천사는 그 사다리를 사용하는 우리들 중 아무라도 될 수
있다."
 요나가 야곱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하지만 천사들은 올라가기도 하지만 내려가기도 했다고
성경에는 씌여 있지 않나요?"
 "그래"
 빵장수가 말했다.
 "바로 그것이 야곱의 사다리이지. 그 사다리는 우리를
하늘에 연결시켜 주듯이, 하늘을 이 땅 위로 내려오게 할 수도
있는 것이지."
 "그렇다면 사랑도 역시 하나의 사다리가 되겠네요?"
 "사랑이 없이는 우리는 우리 자신으로부터 내려올 수가 없는
법이다."
 땅에 발을 내려놓으며 야곱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