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이란 하느님께서 겸손히 가장하시는 것


 빵집 바깥에는 지는 밤의 폭풍이 사라지고 고요한 아침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른 봄의 차가우면서도 화사한 빛이 대기
속에 느껴졌다. 빵집 안에서는 야곱이 양팔 가득 길다란 빵들을
안고, 마치 곡식단을 나르듯 가게 앞쪽의 진열대로 나르고
있었다.
 빵집 주인 사뮤엘이 야곱으로부터 빵을 받아 바구니에 넣기
시작했다.
 "야곱, 우리 옆 마을의 영적인 지도자 한 분이 날씨 관계로
어젯밤을 우리와 함께 지내셨다네. 존경받는 하느님의
사람이지. 그분이 자네를 보고 싶어하셔."
 "내가 여기 있으니 보면 될 것 아닌가."
 머리에서 발끝까지 자신의 모습을 내려다보며 야곱이 말했다.
 "내 말을 이해 못하는군."
 대수롭지 않아 하는 야곱의 태도에 신경이 쓰이는 듯
사뮤엘이 말했다.
 "그분은 자네를 만나기 위해 자신의 하루 계획을 바꾸기까지
하셨네."
 "나의 어머니께서 늘 말씀하시곤 하셨지. '하느님을 크게
웃기려면 그분에게 자신의 계획으 말하라'고 말야."
 야곱이 말했다.
 "이것봐, 야곱. 내가 늘 서류를 정리하곤 하는 저쪽
구석자리를 내줄게. 거기가 덜 시끄러울 거야. 내가 그분을
그리로 모시고 가겠네."
 사뮤엘은 반강제로 야곱을 구석자리의 의자 쪽으로
안내하고는 자리를 떴다.
 야곱은 떠나가는 사뮤엘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기다렸다.
 "야곱이신가?"
 목소리의 주인공은 아래위로 온통 검은색 복장을 하고
있었다. 그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야곱이 의지에서 일어나 그의 손을 잡았다. 두 사람은 잠시
침묵 속에 앉아 있었다. 마침내 방문객 쪽에서 먼저 입을
열었다.
 "야곱, 당신은 뭐랄까‥‥‥ 저를 편안하게 만드는군요."
 "우리를 편안하거나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다만 우리
자신이지요."
 야곱이 나지막히 말했다.
 "야곱, 지금까지의 내 생애는 영적인 추구와 봉사로 이루어진
것이었소."
 고백하는 듯한 목소리로 방문객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린아이였을 때부터 나는 이러한 삶에 이끌렸소. 그런데
뭔가 변화가 생긴 거요. 내가 하느님을 버렸거나, 아니면
하느님이 나를 버리신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답니다."
 "그러시다면‥‥‥"
 야곱이 심각함을 가장하며 물었다.
 "제가 선생님이 하느님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 드릴까요,
아니면 하느님이 선생님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 드릴까요?"
 방문객은 웃었다.
 "좋습니다."
 "내가 웃었는데 좋다고하니, 어째서지요?"
 방문객이 물었다.
 "왜냐하면 너무나 많은 경우에 하느님을 찾는 사람들이 맨
먼저 잃기 시작하는 것이 바로 유머 감각이니까요."
 야곱이 말했다.
 그 남자가 자기 뒤쪽의 빵집 안을 가리키며 물었다.
 "야곱, 당신은 이런 곳에서도 하느님을 볼 수 있나요?"
 "언젠가 위대한 스승 한 분이 말씀하셨지요. 하느님은 있을
만한 장소에서는 자신을 감추고, 없을 만한 장소에서는 자신을
나타내 보인다고 말입니다."
 방문객이 물었다.
 "그렇다면 간밤의 폭풍이나 제가 당신을 방문한 일 같은 것
속에서는요? 당신은 그런 일들 속에서도 하느님을 볼 수
있나요? 아니면 그런 일들은 단지 우연일 뿐인가요?"
 "또다른 위대한 스승 한 분이 말씀하셨습니다. '우연이란
하느님이 익명으로 남아 있고자 하는 방법' 이라고."
 "그건 그분들의 말씀이고, 야곱 당신 자신의 생각은
무엇입니까?"
 방문객이 물었다.
 "제 생각에는."
 턱수염을 잡아당기며 야곱이 말했다.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거울입니다. 어떤 이들은 자기 주위의
세상을 돌아보며 오직 우연만을 보겠지요. 저는 세상을
돌아보며, 우연이란 하느님이 겸손히 자신을 감추기 위해 입고
있는 곳과 같은 것이라고 여깁니다."
 "하지만 만일 하느님이 당산일 버린다면 어떻게 하겠소?"
 그 남자가 조심스럽게 물었따.
 "제가 지혜롭다면, 그것은 나 자신의 환상일 뿐이지
하느님이 나를 떠난 것은 아님을 기억해 낼 것입니다."
 야곱이 말했다.
 "야곱, 당신은 언제나 하느님의 겸손의 옷을 마음속에 두르고
사는가요?"
 방문객이 머리를 흔들며 물었다.
 "물론 아닙니다."
 미소를 지으며 야곱이 말했다.
 "하느님 자신도 때로는 그 옷을 벗으실 때가 있는 걸요."
 "그럼 우리가 우연 소게서 하느님의 손길을 목격했을 때,
그것이 바로 기적이라고 부르는 것입니까?"
 야곱이 말했다.
 "아주 오래 전에 저는 스스로에게 말했습니다. 기적이란
그것을 보고자 하는 우리의 마음에서 일어난다고."
 방문객은 자리에서 일어나 떠날 채비를 했다.
 "야곱, 다른 사람들에게 당신에 대해 말하겠소."
 "적게 말할수록 더 많이 듣게 됩니다."
 야곱이 말했다.


부드럽게 말하고, 크게 들으라


 저녁 어둠 속에 하루가 서서히 지워져가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면서 사뮤엘은 빵집 한 구석을 쓸고 있는
야곱을 지켜보았다. 빗자루질을 하면서 야곱은 새처럼 고개를
한쪽으로 돌리고 있었다. 마치 먼 곳에서 들려오는 어떤 음악을
듣기 위해 애쓰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은 바닥을 쓸고 있는데, 야곱 자네는 춤을 추고
있군. 무슨 일인가?"
 아무 대답이 없었따.
 사뮤엘이 다시 말했다.
 "자네가 빗자루질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나도 알고
있네. 내게 말해 보게. 정말로 하고 있는 게 뭔가?"
 야곱이 웃으며 말했다.
 "내가 지금 정말로 하고 있는 건 빗자루질이지. 나는 또한
에덴 동산에 있는 길을 쓸고 있는 중이라네."
 "누가 자네에게 그 일을 맡겼는가?"
 "누가 우리에게 할 일을 주는 것은 아니라네."
 야곱이 말했다.
 "자기 스스로 자신의 일을 찾는 것이지. 때로 가장 힘든 일은
바로 자신이 할 일을 찾는 일이야."
 사뮤엘은 물러서지 않았다.
 "야곱, 자네는 좀 이상하지 않은가? 빵집에서 일하면서
동시에 에덴 동단에서 일한다는 것이 말야."
 "그럼 어느 쪽 일을 포기할까?"
 야곱이 물었다.
 "내 말뜻은 그게 아니야."
 사뮤엘이 얼른 대답했다.
 야곱이 미소지었다.
 "사뮤엘, 자네도 우리가 늙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을
거야. 우리가 더 젊었을 때는 하늘과 땅을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했어. 지금의 나는 이 지상에서 작은 천국 하나를 발견하는
일에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어."
 "그래서 어떤 천국이라도 찾아냈나?"
 사뮤엘이 물었다.
 "삶에는 우리가 잃어버린 것보다는 우리가 숨겨 놓은 것이
오히려 더 많아."
 야곱이 대답했다.
 "그래서 자네가 그 숨겨 놓은 것을 찾을 수 있도록 하느님이
도와 주시던가?"
 사뮤엘이 웃으며 말했다.
 "아니"
 아주 진지한 태도로 야곱이 대답했다.
 "하지만 어떻게 방향을 몰아야 하는가는 가르쳐 주셨네."
 사뮤엘이 물었다.
 "어떻게 해야 하는데?"
 야곱이 말했다.
 "말할 때는 부드럽게, 들을 때는 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