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앞을 보면서 살아가는 것, 그리고 되돌아볼 때 이해하게 되는 것


 어두워진 길을 걸어 야곱은 집에 이르렀다. 창을 통해 루스
선생과 요나가 낮에 배운 것을 점검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벽난로에는 장작이 타고 있었다. 양철 굴뚝으로 연기가
올라가서 지붕 위로 흩어지고 있었다. 야곱은 아주 어렸을 때
외웠고. 지금에야 그 뜻을 이해하게 된 한 구절을 떠올렸다.
 '주께서 말씀하시되 사람이 홀로 지내는 것은 좋지 못하다.
사람이 홀로 지내는 것은 좋지 못하다.'
 야곱이 문을 열고 들어가자 두 사람의 얼굴이 돌아보며 작은
미소로 그를 반겼다. 촛불의 불빛이 두 사람의 얼굴의 빛과
그림자를 던지우고 있었다. 방 구석구석에 온기가 깃들어
있었다. 사람이 혼자 집에 돌아오는 것과 가정으로 돌아오는 것
과는 아주 다른 것이군, 하고 야곱은 생각했다.
 "늦으셨네요."
 루스가 말했다.
 "네, 사뮤엘이 얘기를 하고 싶어해서요."
 야곱이 말했다.
 "혼자 계시지 않았더니 다행이에요."
 루스가 말했다.
 야곱은 그녀가 어떻게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을까 궁금했다.
 손을 씻고 기도를 한 뒤, 세 사람은 식탁에 앉아 저녁을 먹기
시작했다. 빵 한 조각을 크게 뜯어 수프에 담그면서 요나가
질문을 시작했다. 야곱은 문득 아이의 목소리가 굵어지고
어깨가 넓어져 있음을 깨달았다. '때에 이르렀군'. 야곱은
생각했다. 남자들이 더 남자다워지려고 투쟁하고 있는 동안
소년들은 어느덧 남자가 되어 가고 있었다.
 "야곱."
 요나가 물었다.
 "왜 히브리어에서는 성경을 율법이라고 하죠?"
 루스가 쳐다보았다.
 한 손으로 얼굴과 턱수염을 받친 채로 야곱이 대답했다.
 "왜냐하면 우리가 뛰어오르면 반드시 땅으로 내려온다는
법칙이 있는 것처럼, '율법'은 잘 관찰해서 얻은 진리이기
때문이지. 잘 관찰하는 일이야말로 우리에게 주어진 신성한
책임이라고 할 수 있거든."
 "다른 말로 하면, 율법을 따른다는 것은 우주에 관심을
기울이는 또다른 방식이겠군요."
 요나가 말했다.
 "세상을 지켜보는 것이 하느님을 위해 파수를 서는 것과 같은
것이지."
 야곱이 말했다.
 "하지만 우주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해요."
 요나가 단정하듯이 말했다.
 "그 사실이 우리가 우주를 관찰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야곱이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별을 보면서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찾으니까."
 "그렇다면 관찰하지 않는 것은 죄가 되겠군요."
 반은 농담으로 요나가 물었다.
 "다른 이를 무시하거나, 우리 주위의 세상을 무시하는 것이
죄이지."
 루스가 요나의 표현을 바로잡으며 말했다.
 방안의 온기가 창문을 뿌옇게 만들었다. 야곱의 목소리에는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이 가득 담겨 있었다.
 "사랑이 모든 배움의 시작이자 끝이지. 히브리어로
'가슴'이란 말은 성경의 마지막 글자로 시작해서 성경의 첫
글자로 끝나거든."
 "어째서 거꾸로지요?"
 요나가 말했다.
 야곱이 말했다.
 "왜냐하면 인생은 앞을 보면서 살아가게 되어 있지만,
뒤돌아볼 때 비로소 이해하게 되는 것이니까. 우리는 배움의
끝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처음부터 진리였던 것을 발견하게
되거든."
 루스의 눈이 존경으로 빛나고 있었다.
 "야곱, 당신은 진정한 교사에요."
 야곱이 말했다.
 "훌륭한 교사는 내가 아니라 바로 당신과 요나입니다.
하느님이 내게 친절을 베푸셔서 그대들과 함께 있게 해주셨소.
자신이 받은 친절함으로부터 배움을 얻지 못하는 이는 바보일
뿐입니다."


사랑을 넘어선 사랑


 집안이 정적에 둘러싸였다. 밤이 깊었다. 그러나 야곱과
요나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야곱."
 야곱이 잠들지 않았기를 바라며 요나가 속삭이듯 말했다.
 "응."
 누군가 함께 깨어 있는 것을 반가워하며 야곱이 대답했다.
 "오랫동안 저를 괴롭혀 온 의문이 한 가지 있어요."
 야곱은 어른 목소리 뒤에 숨어 있는 이전의 소년을 떠올렸다.
 "구약성경에서 왜 하느님은 아들 이삭을 희생하도록
아브라함에게 주문하셨을까요?"
 "내 생각에는 하느님은 이삭의 희생을 원하신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투쟁을 원하셨던 것 같다."
 야곱이 말했다.
 "아브라함의 투쟁이 무엇인데요?"
 "하느님을 사랑하기 위한 투쟁."
 "그러면 아브라함에게 그 가르침이 필요하다고 하느님이
생각하신 건가요?"
 "내 생각에는 우리들 자신에게 그 가르침이 필요하다고
하느님은 생각하신 것이겠지."
 "왜죠?"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넘어선 사랑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이해할 수 있도록."
 "이해한다는 것이 그토록 어려울까요?"
 "나도 네가 나와 함께 살기 전에는 그것이 그렇게까지 어려울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저요?"
 "그래, 네가 여기 온 후로 나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데는
참고서가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야기는
아버지와 자식간의 사랑의 이야기이지. 이 사랑의 감정은
심오하고 순수하고 영원한 것이다. 그리고 그 감정으로부터
비로소 우리는 영적 사랑의 깊이를 이해하기 시작할 수 있지."
 "아브라함에게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모순에 찬 하느님의
요구였겠군요."
 요나가 말했다.
 "우리는 우리가 투쟁한 만큼 강해지지."
 야곱이 말했다.
 "당신도 아브라함이 한 것과 똑같이 하셨을까요?"
 요나가 물었다."
 "내가 할 일은 그 이야기로부터 배우는 것이야. 아브라함은
선지자였고, 나는 빵장수거든."
 "야곱, 당신은 대답하실 때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 없으신 것
같아요."
 "자존심 때문에 고통받는 자들만이 자존심을 부정하지."
 "이런 말을 하면 어떠실지 모르겠는데요."
 요나가 말했다.
 "전 언젠가는 당신이 자랑스러워 할 인물이 되고 싶어요."
 "나는 지금 이 순간도 네가 자랑스럽다."
 야곱이 말했다.
 "제가 한 말이 바보스럽게 들리나요?"
 요나의 진지함이 어둠 속에서도 전해졌다.
 "성실함은 그 자체가 진리이지."
 야곱이 말했다.
 "남이 자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해서 자존심에
상저를 받을 필요는 없는 거야."
 야곱은 눈을 감고 기도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미 갖고 있는, 잃고 싶지 않은 모든 것들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