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


 학생들로부터 눈을 돌리는 순간, 요나는 문가에 서있는
야곱과 노인을 보았다. 루스는 교실 앞쪽의 교사 책상에 앉아
있었다.
 "잘 있었니, 요나?"
 방문객이 먼저 말했다.
 "안녕하셨어요. 작은할아버지! 정말 오랜만이에요."
 요나가 놀라며 다가왔다.
 "그래, 이제 널 만날 때가 되었구나."
 흰 턱수염을 가진 분이 말했다.
 루스가 일어나서 아이들에게 밖에 나가 놀도록 일렀다. 몇
명의 아이들은 얼른 뛰어나갔으나, 대부분은 야곱과 방문객을
훔쳐보면서 저희들끼리 킥킥대고 소근거리며 교실을
빠져나갔다.
 이제 밖으로부터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교실 안에
잠시 찾아든 침묵을 에워싸고 있었다. 요나가 늙은 방문객에게
걸어와 그의 두 팔에 안겼다.
 요나와 노인은 이제 잠시 뒤로 물러나 서로를 바라보았다.
마치 시간이 서로의 모습에 얼마나 많은 변화를 가져다
주었는가를 살펴보고 있는 듯했다. 햇살이 창문 가득 피어나고
있었다.
 "야곱 아저씨, 루스 선생님."
 마침내 요나가 말했다.
 "이 분이 저의 작은할아버지이세요.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현자회의의 의장으로 임명되셨어요."
 "요나가 돌아올 때까지 임시로 맡은 겁니다."
 한 손가락을 들어 강조를 하며 노인이 말했다.
 "저는 형님께 그분의 뜻을 존중하겠노라고 약속했습니다. 그
리고 그분의 뜻은‥‥‥."
 노인의 손가락이 요나를 가리켰다.
 "준비되는 대로 네가 돌아와서 현자회의의 의장을 맡아 주는
것이었다."
 "작은할아버지께서는 제가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하세요?"
 요나가 물었다.
 그러자 방문객은 야곱에게로 몸을 돌렸다.
 "그것은 네게 스승이기도 했고 아버지이기도 했던 이 분에게
여쭈어 봐야겠지."
 야곱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집 앞에서 요나를
발결했던 첫날 저녁을 생각에 떠올렸다. 추운 겨울날 밤. 소박한
식탁을 앞에 두고 함께 나눠 먹던 수프를 떠올렸다. 빵집을
향해 걸을 때 아이의 그림자가 갑자기 어른의 넓은 어깨로
바뀌어 있던 것을 떠올렸다. 그리고 아버지가 아이를 품에
데리고 있는 것은 오직 아이를 세상에 내보내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이 순간 무슨 말을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았으니 야곱은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 대신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이 분께서는‥‥‥"
 요나가 야곱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 분께서는 저에게 지혜를 향한 사랑, 그리고 사랑의
지혜를 가르쳐 주셨어요."
 요나가 야곱에게로 다가갔다. 두 사람은 서로를 껴안았다. 두
남자의 머리가 서로의 어깨 위에 기대어 있었다.
 말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두 사람은 할 말이 무척 많았으리라.
그러나 아무 말도 오가지 않았음에도 두 사람은 모든 것을 들을
수 있었다.
 꽃들이 바람결에 흔들리고 있었다. 아이들은 웃고 있었다.
태양 아래서 이 순간이 영원히 정지해 있었다.
 "이제 떠날 준비가 되었습니다."
 요나가 말했다.


인생은 시간만이 탐험할 수 있는 깊이를 지니고 있는 것


 이른 아침에 출근한 빵집 주인 사뮤엘은 빵판이 가득 쌇인
구석에서 혼자서 일을 하고 있는 야곱을 발견했다. 야곱은
빵판에 옥수수 가루를 뿌리고는 부지런히 그 위에 다른 판을
얹어 놓고 있었다. 넓은 실내에 한 줄기 빛이 들어와 야곱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다른 점원들이 출근하려면 아직 한두
시간이나 남아 있어싿.
 "늦게 출근하라고 했더니 더 일찍 오는구먼."
 사뮤엘이 말했다.
 "현자가 말씀하시기를 일을 끝내려고 해서도 안되지만,
그렇다고 도중에 그만 두어서도 안 된다고 하셨거든."
 새로 얹은 판 위에 골고루 옥수수가루를 뿌리느라 손목을
기억자로 구부리면서 야곱이 말했다.
 "요나가 떠난다는 소식을 들었네."
 사뮤엘이 말했다.
 "그렇다네."
 손목을 다시 구부리며 야곱이 말했다.
 "그래, 자넨 어쩔 셈인가?"
 사뮤엘이 물었다.
 "다른 사람들이 다 키운 자식을 떠나 보낼 때 하는 것처럼
나도 그렇게 할 셈이야."
 야곱이 말했다.
 "나에게 사랑의 축복을 주신 것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그리고는 계속 살아가야지."
 "자네 기분은 어떤가?"
 야곱은 하던 일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자기 앞에 반쯤 쌓여
있는 빵판 위에 손을 얹었다.
 "나는 마치 끝없이 넓은 물 속에서 평생을 헤엄쳐 온
사람처럼 느껴져."
 야곱이 말했다.
 "어렸을 때는 헤엄을 멈추고 잠시 머리를 내밀어보면,
수평선이 저 멀리서 끝없이 사라져가는 것 같았어. 이제 내
앞에 있는 그 수평선은 더 이상 멀어지지 않아. 어떤 의미에선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지. 내가 깨달은 것은 내 밑의 물은 내가
지금까지 알아왔던 것보다 훨씬 깊다는 사실이야."
 "맞아."
 가슴께로 머리를 숙이며 사뮤엘이 말했다.
 "인생이란 시간만이 탐험할 수 있는 깊이를 갖고 있어."
 "그리고 시간은 우리가 다음 과목으로 넘어가기 전에 한
과목을 완전히 배울 때까지 기다려 주지 않아."
 또다시 새로은 빵판을 얹어놓으며 야곱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