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을 보기 위해 뒤를 보다


 야곱이라는 이름의 빵장수가 살고 있었다. 그는 가난하지만
경건한 사람이었다. 그는 작은 마을에서 이름없이 살아가고
있었다. 이른 아침마다 빵을 굽는 오븐이 적당히 뜨거워지기를
기다리는 동안, 그는 종이쪽지에다 짧은 글귀들을 적어 놓곤
했다. 그것들은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자기 자신에게 주는
그런 글들이었다.
 어느날 야곱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종이쪽지 하나가 밀가루
반죽 속으로 날아들어가 빵과 함께 구워져 나왔다. 이빵을
사간 어느 부인이 종이에 적힌 글귀를 읽고는, 거기에 담긴
지혜와 통찰력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부인은 곧바로 지혜롭고
친절한 빵장수 야곱을 만나러 갔다. 그렇게 해서 오랫동안
숨겨져 있던 소중한 보물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빵장수 야곱의 소문은 바람의 날개를 타고 멀리 퍼져 나갔다.
같은 마을 사람들뿐 아니라 이웃 마을 사람들까지 야곱을 불러
세웠다. 사람들은 야곱의 집으로 찾아가 기다리기도 했고,
그가 일하는 빵집에도 몰려들었다. 그들은 기도라든가 우정,
나눔 같은 것에 대해 질문을 던졌으며, 자신들의 영혼을
괴롭히는 문제들도 털어놓았다. 아이들은 학교가 끝난 뒤면
나타나 밀가루 부대 위에 앉아서 야곱이 들려 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얼마 가지 않아서, 야곱은 이 모든 소란스러운 관심 때문에
더 이상 마을에서 살 수 없게 되었다. 그는 많지 않은 짐을 꾸려
긴 여행을 떠났다. 그러나 야곱의 명성은 언제나 그 자신보다
한 걸음 앞질러 가 있었으며, 운명이 자신을 조용히 내버려
두지 않는다는 사실을 야곱은 깨달았다.
 그리하여 야곱은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는 다시금
단순한 빵장수로, 혼자서 살아가고 있다. 마을도 평온을
되찾았다. 시간과 존경심이 소란을 진정시켰던 것이다. 물론
사람들은 아직도 야곱의 지혜를 배우려고 들른다. 하지만
지금은 겨울이고, 밤이 깊었으며, 방금 새벽별 하나가 나타나
반짝이기 시작했다‥‥‥.


사람은 누구나 혼자이면서 함께 있는 것


 야곱은 침대에 누운 채로 천장을 가로지른 나무 기둥들을
응시하고 있었다. 동이 트기 직전이어서 벽이 희미하게 보였다.
잠깐 동안 야곱은 혹시 자기가 커다란 고래 뱃속에서 잠이 깬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그는 다시 눈을 감고 새 날을 주신
것에 대해 하느님에게 감사드렸다.
 작은 방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야곱은 자리에서 일어나야만
했다. 천천히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며, 야곱은 인간이란 때로
자기 자신에게조차 얼마나 무거운 짐인가 하고 생각했다.
 좁고 길다란 탁자 위에는 소금이 담긴 작은 접시와 검은 빵
한 덩어리가 놓여 있었다. 야곱은 두 손으로 빵을 들어 축복의
말을 한 뒤 다시 탁자에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엄지 손가락과
검지 손가락으로 소금을 집어 천천히 빵 위에 뿌렸다. 잠시 후,
야곱은 빵 한 조각을 뜯어 혼자서 아침을 먹기 시작했다.
 야곱은 필요로 하는 물건이 극히 적었다. 그것이 오히려
그의 삶을 더 풍요롭게 해 주었다. 적게 원함으로써 그는 더
많이 받을 수 있었다.
 야곱은 빵집까지 걸어갈 때 입는 두툼한 코트에 팔을 집어
넣었다. 잠시 후, 그는 문을 열고 아침의 세상으로 걸어나왔다.
간밤에 내린 눈이 대지를 덮고 있었다.
 그림 속의 한 점처럼 야곱은 눈 쌓인 하얀 캔버스 위를
가로질러갔다. 등 뒤에서 바람이 불어와 그가 걸어가면서
남기는 발자국들을 금세 지워 버렸다.
 빵집 뒷문에는 얼음이 달라붙어 있어서 어깨로 밀쳐야만 열
수가 있었다. 얼음이 깨어져 나가면서 마치 작은 나뭇가지를
발로 밟아 부러뜨리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 비둘기들이 빵집
뒷마당에 떨어진 빵부스러기와 곡식 낟알들을 쪼아 먹다 말고
야곱을 올려다보았다. 아침마다 늘 보게 되는 비둘기의 이런
몸짓에 야곱은 마음이 따뜻해져 오는 것을 느꼈다.
 빵집 안으로 들어가자 그의 무게에 눌려 마루바닥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야곱에게는 익숙한 소리였다. 어둠이
야곱을 껴안았으며, 그는 그 포옹을 거부하지 않았다. 그것
역시 그에게는 익숙한 것이었다.
 희미한 어둠 속을 둘러보다가 야곱은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우리가 어딘가에 뿌리를 내린다는 건 참 이상한 일이야.하고
야곱은 생각했다. 우리는 바람에 날아다니는 씨앗과 같아서
어둠 속에서야 비로소 눈이 떠지지.
 야곱은 오븐 옆에 놓인 빵 선반에서 성냥개비 하나를 집어
불을 그었다. 그리고는 몸을 굽혀 화덕에 불을 붙였다.
불꽃들이 푸른색 눈물방울처럼 춤을 추며 한 줄로 퍼져나갔다.
잘 되고 있군. 화덕 안을 들여다보면서 야곱은 생각했다. 한
개의 불꽃이 많은 불꽃을 일으키는 법이다.
 천천히 허리를 펴고 일어난 야곱은 뒷주머니에서 연필을
꺼냈다. 그리고는 밀가루 반죽 옆에 쌓아 놓은 작은 종이쪽지
더미에서 한 장을 꺼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옛날의 어느 양치기 목자처럼 야곱은 그렇게 홀로 앉아 바람
속에서 들려오는 시를 듣고 있었다.
 그가 쓴 글들이 놀라운 지혜를 담고 있다고 다른 이들이
말할 때마다 야곱은 대답하곤 했다.
 "내가 쓰는 글은 실제의 나 자신보다 더 지혜롭답니다."
 다른 이들이 또 "그냥 겸손하신 거지요"하고 이야기하면
야곱은 이렇게 대답했다.
 "하느님은 언제나 연주를 하고 계십니다. 다만 청중인 우리가
늘 듣고 있지 않는 것뿐이지요."
 야곱은 밤 사이 놓아 두었던 밀가루 반죽을 밀기 시작했다.
뜨겁게 달구어진 오븐에서 나오는 열기가 담요처럼 그의 머리
위에 머물렀다. 야곱은 그 담요 속에서 몸을 웅크렸다. 어쩌면
자신이 아직도 침대에 누워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착각도 들었다.
 손으로 반죽기를 돌리면서 야곱은 마을의 다른 잡들을
머리에떠올렸다.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남편과 아내들, 앞날의
희망을 가득 담은 커다랗고 둥근 눈의 아이들도 보였다. 야곱
자신의 집도 보였다. 거기에는 빈 침대가 있었다. 자신이
누웠던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는,
 자신에 대한 생각을 하다 보니 문득 외로움이 밀려왔다.
그에게는 그것이 익숙하지 않은 감정이었다. 그토록 여러 해
동안 혼자 사는 것을 편안하게 여겨온 사람에게 어떻게 갑자기
이런 외로움이 밀려들 수 있을까 의아한 생각마저 들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등 뒤에서 갑자기 커다란 소리가 들려와 야곱을 놀라게 했다.
고요하고 충만한 혼자만의 순간도 깨어졌다.
 빵집의 젊은 점원 맥스가 밀가루 부대를 어깨에 메고 반죽기
앞으로 걸어왔다. 그는 얼른 야곱에게 사과를 했다.
 "미안해요, 야곱. 놀래키려던 건 아니었어요. 그런데 혼자
있나요?"
 야곱이 맥스에게로 몸을 돌리며 말했다
 "우리 모두는 혼자이면서 함께 있는 것이지."
 잠시 후, 두 사람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서서 밀가루 반죽을
손바닥에 굴려 빵을 만들기 시작했다.
 "야곱, 질문을 하나 해도 되겠어요?"
 맥스가 물었다. 야곱은 아무 대답도 없이, 구울 준비가 된
빵판을 들어 오븐 칸에 밀어넣었다. 맥스가 놀라서 다시 물었다.
 "야곱, 지금 저를 무시하는 건가요?"
 "아니야, 난 지금 그동안 내가 나 자신을 너무 무시해 온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던 중이야."
 야곱이 말했다. 야곱의 말투는 마치 빵판에 뿌려지는
밀가루처럼 공허하기만 했다.
 맥스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야곱의 감정이
흐트러진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맥스가 불편해 하는 것을 눈치챈 야곱은 맥스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삶을 살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우리는 우리가 찾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를 때가 있지."
 이때 아무 기척도 없이 안으로 들어온 빵집 주인 사뮤엘이
끼어들었다.
 "난 내가 찾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말할 수 있지."
 체구가 큰 사뮤엘은 반죽 기계 앞으로 성큼 다가서면서 마치
자기가 처음부터 이 대화에 계속 끼어들어 있었던 것처럼
당연하게 말을 이었다.
 "난 아직도 나타나지 않고 있는 다른 점원들과 손님들을 찾고
있네."
 고개를 끄덕이며 빵집의 아침 상황을 들러본 사뮤엘이 말했다.
 "고맙네, 야곱. 자네만은 언제나 믿을 수가 있어."
 스스로 만족한 사뮤엘은 말을 하면서 지휘자처럼 손가락을
흔들었다.
 "맥스에 대해서는?"
 야곱이 사뮤엘에게 눈치를 주며 물었다.
 그러자 사뮤엘이 마지못해 말했다.
 "맥스가 자네처럼 이 집에서 오랫동안 일한다면 그때 가서
감사하도록 하지."
 야곱이 말했다.
 "사뮤엘, 지금 이 순간에 감사하도록 하게. 미래의 일은
미래에 맡겨 두고. 우리들 중 많은 사람들은 앞으로만
달려가면서 인생을 살고 있지. 그래야만 마치 자신이 어딘가로
향해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야."
 "맥스 들었지?"
 밀가루 부대를 새로 가져오려고 자리를 뜨는 맥스에게
사뮤엘이 말했다.
 "이 사람은 내가 하찮은 말을 해도 금방 그것을 깊은 의미가
담긴 말로 바꿔 놓는단 말야."
 "나는 빵 굽는 사람일 뿐이야."
 칭찬의 말로부터 한 걸음 비켜나며 야곱이 말했다.
 "밀가루를 갖고 빵을 만들 뿐이지. 밀가루를 만드는 곡식은
하느님이 주신 선물이고."
 그 말에 사뮤엘이 기분좋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자신의
작업복 밑의 뚱뚱한 배를 두드리며 말했다.
 "아주 좋은 선물이지. 안그런가?"
 "자네의 우정 또한 나에게는 큰 선물이었네."
 야곱이 말했다.
 "난 자네의 지혜에 감사하고 있네. 자네가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전부 알지는 못해도 말야."
 다시 손가락을 흔들며 사뮤엘이 말했다.
 야곱은 조용히 말했다.
 "때로는 우리 마음 속 깊은 비밀을 우리 자신도 모를 때가
있지."
 다른 목소리들이 빵집안으로 들어오면서 세 세람만의
분위기가 깨졌다. 마치 매듭을 엮듯이 빵 만드는 기술자들간에
아침 인사가 오가고, 곧이어 각자의 작업이 조화롭게 맞물려
돌아가기 시작했다.
 빵판과 수레들이 오븐 쪽으로 밀려왔다가는, 이네 황금색으로
잘 구워져 나온 빵들을 싣고 뒤로 물러났다. 둥그란 과자들은
마치 수많은 동전들처럼 쟁반에 쏟아졌다가는 부드럽고 따뜻한
상태에서 부지런히 가게 진열대로 옮겨졌다. 거기서 마을
사람들은 동전을 내고 따뜻한 빵을 사서는 코트 속에 넣고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어렇듯 끊임없는 물결처럼 작업이 진행되는 가운데, 순간
순간들이 마치 하나의 강물처럼 야곱의 발 아래로 흘러갔다.
하루가 얼마나 긴 시간인가를 느낄 사이도 없이 또 하루가
지나갔다. 그렇지만 다른 날들과 마찬가지로 충실한 하루였다.
 그리고는 날이 저물었다. 새벽이 어느덧 황혼녘을 자아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