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먼 길을 온 것 같다고 늘낄 때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면서 야곱은 다시 두꺼운 코트로
몸을 감쌌다. 옷을 입으면서도 그는 자신의 삶이 이제 곧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되리라는 걸 예감하지 못했다.
 한 가닥 실처럼 마을을 통과하며 흐르는 강을 따라, 집들이
마치 바느질을 한 것처럼 나란히 늘어서 있었다. 야곱은 그
강을 따라 집으로 돌아왔다. 도중의 어떤 집들은 안에서 끓이고
있는 따뜻한 수프 때문에 유리창에 잔뜩 김이 서려 있었다.
언제였던가, 부엌의 어머니 곁에 서서 뽀얗게 김이 서린
유리창에다 자기 이름을 쓰곤 하던 기억이 난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도 떠올랐다. 그분들을 잃었을 때의 상실감도 떠올랐다.
야곱은 더 이상 기억하는 일을 멈추었다.
 집 가까이 이르렀을 때 야곱은 누군가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체구가 작은 사람이 야곱의 집 문앞에 앉아
있었다. 누군가 저녁 시간을 함께 할 사람이 있다는 생각에
야곱은 마음이 설레었다.
 "감사합니다."
 야곱은 누구에겐지 모르게 들릴락말락하게 입술을 움직였다.
하지만 감사해야 할 대상이 누구라는 걸 그는 잘 알고 있었다.
더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사내아이였다. 아이는 기대에 찬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바지에 떡처럼 달라붙은 먼지를
털어내려고 무척 애를 썼다.
 야곱은 아이에게 손을 흔들며 그만두라는 몸짓을 했다.
그래도 아이가 불편해 하자 야곱은 말했다.
 "먼 길 오느라고 묻은 것을 털어내야 한다면, 나 역시 내
옷에 묻은 밀가루를 털어내야 하겠지."
 "그럼 당신이 빵장수 야곱이신가요?"
 의심하는 마음을 접으며 아이가 물었다.
 "그렇게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지."
 야곱이 대답했다.
 그 대답은 아이가 기대했던 대답이 아니었다. 하지만 아이는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다
 "제가 먼 길 온 것을 어떻게 아셨어요?"
 "너 자신이 먼 길을 온 것 같지 안다고 생각한 적이 있니?"
 사려 깊고 지혜로운 목소리로 야곱이 말했다.
 아이는 아무 대답을 하지 않은 채로 야곱이 한 말에 대해
생각에 잠겼다.
 야곱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 어떤 질문에도 침묵이 첫째 가는 가장 현명한
대답이지."
 "질문에 첫째 가는 대답이 침묵이라면, 그럼 둘째 가는
대답은 무엇인가요?"
 아이가 물었다.
 "자비심이지."
 야곱이 말했다
 "자, 집안이 따뜻하니 어서 들어가자."
 아이가 반문했다.
 "하지만 당신은 내가 누구이며, 어디서 왔고 이름이
무엇인지도 모르시잖아요, 그런데 왜 아무것도 묻지 않고 저를
집안에 들어오게 하시려는 거죠?"
 "그래, 알았다."
 야곱이 말했다.
 "난 춥다. 넌 누구지?"
 그제서야 아이는 웃었다.
 "사실은 저도 추워요."
 "내 말이 바로 그 말이다."
 야곱은 그렇게 말하고 나서, 아이에게 어서 집으로
들어가자고 손짓을 했다.
 그러나 아이는 그자리에 서서 고개를 흔들었다.
 "당신이 이 글을 읽기 전에는 당신의 집으로 들어가선 안
된다고 하셨어요."
 아이는 야곱에게 겉봉에 단정한 글씨가 쓰여진 편지 한 통을
내밀었다.
 야곱은 편지를 받아들고 그 자리에 서서 천천히 봉투를
뜯었다. 그리고는 편지지 너머로 아이를 지켜보며 그곳에 적혀
있는 글을 읽기 시작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황금빛으로 저물어
가는 저녁빛 속에 서 있었다.

빵장수 야곱에 대한 이야기를 현자회의에서 들은 지도
몇 해가 흘렀습니다. 처음에 당신이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별로 호기심을 갖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겸손하고 자비로운 분이라는 말을 들은
뒤부터는 당신을 꼭 한 번 만나 보고 싶었습니다. 또한 저의
건강이 별로 좋지 않게 된 후로는 더 늦기 전에 당신을
만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일전에 제가 거지 차림으로 당신의 빵가게에 나타났을 때
당신은 마음을 열고 저를 맞아 주었고, 더불어 제 마음도
열게 해 주었습니다. 나중에 제가 누구인가를 밝혔을 때도
당신은 변함없이 따뜻했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오랜 세월을 살아왔습니다만, 인간에게
주어진 날들은 매우 짧은 듯합니다. 저는 당신에게 저 대신
현자회의의 의장을 맡아 달라고 부탁했으나, 당신은
빵장수로 남겠다고 하셨습니다. 저 역시 당신을 그냥 그
자리에 계시도록 한 것이 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머지 않아 저는 떠날 것이고, 그렇게 되면
현자회의의 의장직은 공석으로 남겠군요. 그런데 저에게는
어린 손자가 한 명 있습니다. 저는 그 아이에게 큰 희망을
걸고 있습니다. 아이의 이름은 요나입니다. 마음으로 그
아이를 맞아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아이의 스승이 되어
주시고, 아버지의 어깨가 되어 주십시오. 아이는 부모를
모두 잃었습니다.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의 마지막 소원으로
이 부탁을 드립니다.
 우리의 경전에 보면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은 좋지 않다고
했는데, 지금 요나는 당신과 마찬가지로 혼자입니다. 당신이
많은 사람들에게 힘이 되었듯이, 요나가 당신에게 힘의
근원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하겠습니다.
 내 기도 속에 늘 당신이 있습니다. 먼 훗날, 저기 어디선가
당신과 즐겁게 만나게 될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하늘이 어두워져 가고 있었다. 마을의 집들에서 흘러나오는
램프 불빛과 벽난로의 불빛들이 춤을 추듯 원을 그리며 아이와
야곱을 에워쌌다. 두 사람은 그렇게 하늘 아래 홀로 함께 서
있었다.
 야곱은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의 별들을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요나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