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를 만나라, 그들은 어디에나 있다


 강둑을 따라, 야트막한 풀들이 군데군데 눈 속에서 차가운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마치 봄을 기다리며 추위를 견디고 있는
얼굴들 같아 보였다. 어디선가는 새들이 지저귀면서 날고
있었다. 아직도 미명에 잠겨 있는 새벽 하늘을 깨우려는 듯이.
 새벽 공기 속에 지상의 수호자처럼 서 있는 커다란 떡갈나무
둥치를 지나 야곱과 요나는 빵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때 마른
체구의 중년 여성이 두 사람 앞으로 걸어왔다. 그녀는 야곱과
요나를 발견하고는 마치 잘못된 일을 바로잡고야 말겠다는
듯이 장갑을 고쳐 끼었다.
 "안녕들 하세요, 드디어 만나게 됐군요."
 미소를 지으며 그녀가 말했다.
 야곱과 요나는 조심스레 서로를 쳐다보았다.
 "이쪽이 요나겠군요."
 그녀는 다정하면서도 자신감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막
떠오르는 아침 해가 밤색으로 땋아내린 그녀의 머리칼에
황금빛을 얹어 주었다.
 "네, 그래요. 그리고 이 분은 야곱이시구요."
 아이는 다시금 야곱의 얼굴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래, 나도 알고 있다."
 그렇게 말하고 나서 그녀는 야곱의 시선과 마주치자 스커트
주름을 폈다.
 "우린 지금 빵집으로 가는 길입니다."
 야곱이 약간 더듬으며 한 마디 거들었다.
 "저는 학교에 가는 길이지요."
 여자가 뭔가를 암시하듯이 말했다.
 야곱이 요나에게 말했다
 "이 분은 우리 마을에 새로 오신 루스 선생님이시다."
 그러자 루스가 놀라며 말했다.
 "저를 알고 계셧군요?"
 "그건 좀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군요."
 야곱이 웃으며 말했다.
 "아무튼 전 선생님을 알고 있습니다. 학교가 끝난 뒤 저를
만나러 오는 아이들이 선생님이 아주 좋고 친절하신 분이라고
하더군요."
 "저는 당신이 지혜로운 분이라고 들었어요."
 한결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루스가 말했다.
 "지혜로운 사람은 어디서나 교사를 만나지요."
 야곱이 대답했다.
 "우리와 함께 빵집까지 걸어가시겠어요?"
 요나가 말했다.
 "아니, 그대신 네가 나하고 학교에 갔으면 좋겠다."
 다시 의무감을 되찾은 말투로 그 여성이 말했다.
 입을 삐죽거리며 요나가 말했다.
 "하지만 저는 빵집에서 야곱한테 배우는 걸요."
 "학교에 다니면서도 야곱에게서 배울 수가 있단다. 우리
모두가 그렇게 하고 있으니까."
  루스가 안심시키듯이 말했다.
 어느덧 해가 높이 떠올랐다. 세 사람은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햇빛 속에 함께 서 있었다. 때가 이르렀다는 것은
하느님의 속도에 세상의 일을 맞추는 것이지, 하고 야곱은
생각했다. 문득 자신의 아이들이 공부는 하지 않고 밀가루 부대
위에 앉아 야곱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고 걱정하던 부모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부모가 교사에게 자신의 자식을 내맡긴다는
이해심을 갖는 일이 지혜를 갖는 일보다 훨씬 어려운 일임을
야곱은 이제야 비로소 깨달았다.
 야곱이 요나의 어깨에 부드럽게 손을 얹으며 말했다.
 "요나야, 루스 선생님 말씀이 옳은 것 같다. 이제 선생님을
따라가거라. 빵집에는 학교가 끝난 뒤에 오고."
 루스가 마음을 놓으며 말했다.
 "수업이 끝나면 제가 아이를 빵집까지 데려다 주겠어요."
 "하지만 야곱."
 아이가 항의하며 말했다.
 "저는 당신한테 배우기 위해 이곳에 왔어요."
 "안다"
 야곱이 말했다.
 "그리고 나는 너한테 배우기 위해 이곳에 왔고."
 "이해할 수가 없어요. 전 안 가겠어요."
 요나가 발을 구르며 말했다.
 "나도 이제서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단다."
 야곱이 말했다.
 "야곱, 이 여자분이 제게 무엇을 가르칠 수 있죠?"
 요나가 계속 고집을 부리며 물었다.
 "그것이야말로 이제부터 네가 알아내야 할 일이지."
 야곱이 말했다.


배우는 것을 사랑하라, 그리고 사랑을 배우라


 야곱이 빵집에 도착했을 때, 사뮤엘이 무릎을 꿇고 오븐에
불을 붙이느라 애를 먹고 있었다.
 "어젯밤에 바람이 몹시 세게 불더군."
 사뮤엘이 말했다.
 그리고는 주위를 돌아보며 사뮤엘이 물었다.
 "요나는 어디 갔지?"
 "오는 길에 새로 오신 루스 선생님을 만났어."
 밀가루 부대를 뜯으며 야곱이 대답했다.
 "요나는 그 선생님을 따라 학교엘 갔어."
 "학교엘 갔다구?"
 사뮤엘이 몹시 실망한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는 여기 이 빵집에서 배운다구. 자네도 여기서 배웠고.
자네가 바로 우리의 교사 아닌가."
 "빵집이 훌륭한 교시일 수도 있겠지."
 야곱이 말했다.
 "하지만 아이에게는 교사가 필요한 만큼이나 아버지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난 깨달았어."
 "자네가 그 둘 다를 할 수 없단 말인가?" 많은 사람들도
그렇게 하는데 말야."
  사뮤엘이 물러서지 않고 물었다.
 야곱은 반죽기의 날개가 쉼없이 돌아가면서 밀가루 덩어리가
구름처럼 부풀어오르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교사는 가르치는 것을 사랑하지. 아버지는 사랑을 가르치고.
가르치는 일은 난 잘 알아. 하지만 사랑에 대해선 지금 배우고
있는 중이야."
 야곱이 대답했다.


많은 연인들이 사랑 없이 함께 잔다


 야곱이 작업대에서 일하고 있는데 사뮤엘이 다시 돌아왔다.
 "야곱, 아까 우리가 나눈 대화에 대해 생각해 보았는데 조금
의문나는 점이 있어. 어떻게 하면 우리는 사랑에 대해 배울 수
있지?"
 "사랑을 함으로써지."
 야곱이 말했다.
 "그것은 아무 의미도 없는 말인 것 같군."
 사뮤엘이 말했다.
 "많은 연인들이 사랑 없이 함께 자는 것도 무의미한 일이지."
 "그렇지만 한 번도 사랑해 본 경험이 없는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지?"
 "모든 사랑은 믿음에서 나오는 행위이지. 비록 믿음이
언제나 유행하는 건 아니지만 말야. 우리들 중의 어떤 사람은
태양 아래서 따뜻하게 지내는 행운을 누리지. 하지만 우리들
중 또 어떤 사람은 그늘이 있으면 반드시 어딘가에 태양이
있다는 믿음 때문에 따뜻해질 수가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