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은 쏜살같이 흘러가고, 하루하루는 굼벵이처럼 기어간다


 야곱이 빵잡에서 하는 일은 반복적이고, 익숙하고, 쉼없이
계속되는 일이었다. 야곱은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도 잊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온전히 그곳에 있지도 않았다. 때로 자신을
잃어버림으로써 그는 자신의 길을 발견하곤 했다.
 "야곱."
 날카로운 목소리가 야곱의 평온함을 흔들었다.
 그러나 야곱은 내면으로 들어가 침묵의 세계를 놓치지
않았다. 빵판이 서로 맞물려 들어가는 것에 정신을 집중하면서,
그는 순간 순간들이 서로 맞물려 발 아래로 흘러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시간의 축적, 여러 세대들, 세월은 쏜살같이
날아가는데, 하루하루는 굼벵이처럼 기어가는군, 하고 야곱은
생각했다.
 "야곱!"
 늙은 여자 하나가 갈라진 목소리로 집요하게 야곱을 소리쳐
부르고 있었다.
 야곱은 침묵 속에 노파를 바라보았다.
 "이봐요, 젊은이. 내 말 듣고 잇수?"
 "네."
 야곱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당신도 듣고 있습니까?"
 "그건 상관할 것 없고."
 노파가 말을 가로챘다.
 "내가 왜 여기에 왔는지 알우?"
 "우리 모두가 그렇듯이, 질문을 하러 오셨겠죠."
 "질문하러 온 게 아니라 답을 얻으러 왓다구."
 참을성 없이 노파가 말했다.
 "말씀하시는 걸 보니 벌써 답을 갖고 계신 것 같군요."
 야곱이 말했다.
 "아니."
 노파가 투덜대며 말했다.
 "답을 모르니까 젊은이를 만나러 왔지."
 "당신처럼 인생 경험이 많으신 분도 모르는 일을 제가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까?"
 야곱의 말에 노파는 콧방퀴를 뀌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때로 우리는 새 것을 알 필요가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방식으로 알 필요가 있기도 하지요."
 야곱이 말했다.
 원을 그리며 반복해서 돌아가는 빵집 안의 작업들과 주위의
빵냄새가 야곱과 노파를 둘러싸고 있었다.
 "야곱, 당신을 보러 이곳까지 온 이유는 내가 평생 동안 알고
지낸 친구 하나가 무척 내 속을 썩이고 있기 때문이라우."
 "어쩌면 당신의 그 감정을 내려놓아야 할지도 모르겠군요.
우정이란 것도 음악과 마찬가지로 때로는 잠시동안 침묵이
필요하니까요."
 "하지만 이번은 매우 고통스런 경우야."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대부분의 문제들은, 그 문제가
무엇인가보다는 우리가 어떻게 그 문제를 받아들이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야곱은 반죽 기계 앞을 떠나 저울이 있는 곳으로 갔다.
그곳에서 그는 새로 반죽을 만들 밀가루를 저울에 달았다.
노파도 따라서 움직였다.
 "이 친구가 나를 배신했다우. 이것만큼은 절대로. 절대로
용서할 수가 없어."
 "우리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경우라도, 우리는 용서를
기억해야만 합니다."
 야곱이 말했다.
 "그건 왜 그렇지?"
 노파가 물었다.
 "지혜가 담긴 책들에 보면, 정의를 추구하되 언제나 자비를
사랑하라고 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만일 나에게 그런 방향으로 나아갈 힘이 없을 때는?"
 "그때는 왜 자비가 더 큰 정의인가 하는 것을 이해하게 될
겁니다."


다른 이들에게 항구를 제공해 줄 때 우리 자신의 풍랑은 가라앉고


 저녁을 먹고 나서, 야곱과 요나는 벽난로 앞에 앉았다.
요나가 학교에서 배우는 책들을 바닥에 펼처 놓았따. 요나가
말했다.
 "오늘 학교에서 시에 대해 배웠어요. 한 시인은 아름다움은
진리라고 썻어요. 야곱, 당신은 그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나는 진리는 그 자체가 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름다움은
언제나 아름답다고 할 수는 없지."
 "그럼 시인들은 정직하지 않은가요?"
 "정직하지 않다기보다 불완전하다고 봐야겠지. 우리 모두와
마찬가지로."
 요나는 이해가 가지 않는 표정이었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는 자라서 실패자가 된다는 말인가요?"
 "아니지'
 확신이 담긴 목소리로 야곱이 말했다.
 "우리 모두가 자신의 실패로부터 배우고 성장할 수가 있는
것이지."
 "사람이 자신의 실패에 빠져 헤어나지 못할 수도 있나요?"
 "실패만이 아니라 사람은 성공의 바다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기도 한단다."
 야곱이 말했다.
 "저는 멋진 항해사가 되도록 노력할게요."
 요나가 용기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야곱이 말했다.
 "그리고 난 너에게 항구가 되어 주마."
 "전 더욱 강해질 거에요."
 그렇게 말하는 아이의 눈에 눈물이 비쳤다. 감상적이 된
아이는 자신이 생각지도 않던 질문을 던졌다.
 "야곱, 당신은 제게 항구가 되어주는 걸로 충분하시겠어요?"
 "충분하지."
 "정말로요?"
 "물론이지."
 야곱이 말했다.
 "다른 이들에게 항구를 제공해 줄 때 우리 자신의 풍랑이
가라앉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