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우리를 어디로 인도하든 그 나름대로 목적이 있는 법


 한낮이 되어 야곱은 휴식 시간을 갖고 있었다. 그는 빵집
뒷문에 받쳐 놓은 나무 상자 위에 앉아 있었다. 밀가루 부대를
부리고 내리고 하는 뒷마당 진흙 위에 발자국들이 찍혀 있었다.
각 발자국마다 빗물이 고여 있고, 비둘기들이 그 작은 웅덩이에
부리를 들이밀고 있었다.
 우리 발자국이 조그만 우물이 되었군, 하고 야곱은 생각했다.
이렇듯 다른 이들이 우리가 지나간 자국에서 물을 길어낼 수가
있어. 인생의 길이 우리를 어디로 인도하든 거기에는 그
나름대로 목적이 있는 법이지.
 "야곱"
 슬픔에 가득찬 얼굴로 다가오며 한 여자가 물었다.
 "시간 좀 내 주실 수가 있나요?"
 "내 시간은 사실은 내 것이 아니랍니다."
 야곱이 웃으며 말했다.
 "시간은 하느님의 것이지요. 우리 모두는 그것을 빌려 쓰고
있을 뿐입니다."
 "이쪽으로 와서 앉으시지요."
 야곱이 여자에게 손짓을 했다.
 "얼굴은 해를 향해 두세요. 그러면 세상이 훨씬 밝아
보인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려고 해요."
 야곱 곁에와서 앉으며 여자가 말했다.
 야곱은 침묵 속에 앉아 있었다.
 "몹시 아프셔요. 저는 어머니가 이대로 고통을 견뎌내시도록
기도해야 할지, 아니면 그냥 떠나시도록 기도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여자가 스스로 감정을 정리하도록 야곱은 잠시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어쩌면 제가 붙들고 있기 때문에 어머니는 돌아가시지
못하고 있는지도 몰라요. 정말 그럴까요? 어머니에 대한 저의
사랑이 어머니를 고통 속에 붙들어 두고 있는 걸까요?"
 "부모는 붙잡는 것을 배우지요. 그리고는 계속 붙잡고 있느라
애를 씁니다."
 야곱이 말했다.
 "그리고 아이들은 놓아 달라고 요구합니다. 그리고는 계속
놓여 나기 위해 애를 쓰지요."
 "아아, 어째서 인생에는 그토록 많은 고통이 따르는 걸까요?"
 여자가 신음한듯이 말했다.
 "그 질문에 답을 한다고 해서 고통이 적어질까요?"
 야곱이 대답했다.
 여자가 한 손을 다른 손에 포개며 말했다.
 "저는 계속해서 당신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그런데 당신이
말하는것은 전부 '어쩌면'이라든가 '아마도'라는 말뿐이군요.
저는 제가 무엇을 느끼고 있는가를 알려고 하는 게 아니에요.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고 싶은 거라구요!"
 여자는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아는 것은 많고 느끼는 것은 적은 그런 상태가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겠지요."
 야곱이 말했다.
 "그리고 나아갈 길을 찾으려면 자기 안에 있는 길을
들여다봐야 합니다."
 "그럼 어떻게 시작해야 하나요?'
 여자가 물었다.
 "조용하게."
 야곱이 대답했다.
 잠시 후, 여자는 평온함을 되찾았다.
 "저희 어머니는 회복하지 못하실 거에요. 모든 일이 다시
전과 같지는 않을 거에요. 그렇지요?"
 여자가 야곱을 바라보았다.  그 눈길은 마치 부둣가에 서서
자신의 모든 재산을 실은 배가 떠나가는 것을 바라보는 듯한
그런 눈길이었다.
 "당신의 말이 맞습니다."
 야곱이 말했다.
 "아무것도 전과 같을 수는 없습니다. 시간이라는 것은 잠궈진
방이 아니라 끝없는 복도와 같습니다. 그리고 매순간마다
새로운 문이 나타납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그때는 어떻게 하지요?"
 여자가 물었다.
 야곱은 여자의 얼굴 너머, 강 건너 자신의 오두막 쪽을
바라보았다.
 "우리는 종종 자신이 혼자라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그 정도로 혼자인 것은 결코 아닙니다."


우리들 중 지도를 가진 자는 아무도 없지만 우리 모두가 나침반을 갖고 있다


 야곱이 집에 돌아왔을 때 요나가 저녁식사를 준비하느라
그릇들을 꺼내 놓고 있었다. 초생달 한 조각이 어느새 유리창
안에 자리잡고 있었다.
 "학교는 어땟니?"
 야곱이 물었다.
 "저는 루스 선생님이 좋아요."
 요나가 대답했다.
 "나는 학교에 대해서 물었는데, 너는 선생님이 좋다고
말하는구나. 자, 오늘 무엇을 배웠는지 말해다오."
 요나가 말했다.
 "오늘은 루스 선생님이 나침반의 원리에 대해 가르쳐
주셧어요. 선생님은 만일 우리가 길을 잃더라도 목적지에 갈
수 있는 방법은 알아야 한다고 하셨어요."
 눈가에 주름이 잡힐 정도로 야곱은 크게 미소를 지었다.
 "지혜서에는 우리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를 때조차도
그 길이 우리를 반드시 목적지에 데려다 줄 것이라고 적혀
있단다."
 "선생님은 또 나침반의 바늘은 언제나 북쪽 방향만을
가리키기 때문에 그것을 기준으로 다른 방향들도 알 수 있다고
하셨어요."
 "그래"
 야곱이 말했다.
 "그리고 우리 각자는 삶 속에서 잠시 멈춰 서서 우리 자신의
나침반이 가리키고 있는 북쪽이 무엇인가를 물어 볼 필요가
있다."
 야곱이 말을 이었다.
 "우리들 중 어떤 이에게 나침반이 가리키는 북쪽은 사랑이고,
어떤 이에게는 두려움, 어떤 이에게는 권력이기도 하지.
나침반의 북쪽이 사랑이라면 우리는 우리가 하는 일들을 타인에
대한 배려와 도움으로 채울 수가 있어. 하지만 만일 나침반의
북쪽이 두려움이라면 불안정과 의심이 우리를 지배하게
되겠지. 그리고 나침반의 북쪽 방향이 권력이라면, 누가 그
권력을 잡을 것인가에 대한 걱정과 머리 싸움이 우리의 삶을
채우게 될 거야. 우리의 나침반이 향하고 있는 북쪽이
무엇인가에 따라 우리는 그것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지."
 "그렇다면 진정한 북쪽은 무엇이죠? 그건 어디에 있나요?"
 "그것은 우리가 마땅히 향해 가야 한다고 알고 있는 바로
거기에 있지."
 "하지만 만일 그곳이 어딘지 모르거나 길을 잃었을 경우에는
어떻게 하죠?"
 요나가 약간 실망한 표정으로 물었다.
 "우리가 어떻게 길을 잃을 수 있을까?"
 야곱이 되물었다.
 "문은 오직 두 개밖에 없어. 우리가 들어온 문과 우리가 나갈
문. 그리고 길을 가는 도중에는, 우리가 알고 있든 모르고 있든
우리는 언제나 우리 자신에게 방향을 일러 주고 있지. 우리들
중 아무도 지도를 가진 이는 없지만, 우리 모두가 나침반을
갖고 있으니까."
 "루스 선생님은 줗은 분이세요."
 잠시 침묵하다가 요나가 말했다. 그리고는 동의를 구하려는
듯 야곱을 쳐다보았다.
 "그래"
 야곱이 말했다.
 "좋은 스승은 거울도 되고 유리창도 되어 주지. 그들은 그
거울을 통해 우리 자신을 비춰 보게 하고. 그 유리창을
통해서는 세상을 바라보게 한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