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저마다 바람직한 얼굴의 주인공이 되고 싶다. 얼
굴은 인품이 짖는 예술이요, 개성(個性)이 창조하는 작품
이다. 누구나 좋은 얼굴을 갖고 싶어하지만 그것은 마음
대로 되는 일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자기의 얼굴을 선택하는 자유는 없다. 부모
가 지어 주는 얼굴을 갖고 이 세상에 태어난다. 아니 부모
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다. 좋은 얼굴을 가진 자녀를
낳고 싶지 않은 부모가 세상에 어디 있으랴. 부모도 자기
자식의 얼굴을 결정하는 자유와 능력을 갖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자기 이상의 어떤 힘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 그 힘
은 무엇일까. 우연인가, 또는 섭리인가. 요컨대 불가지(不
可知)의 힘이다.
 내가 대해 본 얼굴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버트런드
러셀의 얼굴이다. 보드라운 백발에 덮인 러셀의 불그레한
얼굴은 원숙한 철인(哲人)의 얼굴에 조금도 손색이 없었다.
정말 좋은 얼굴이었다. 위일즈의 산장에서 러셀의 백발온
용(白髮溫容)을 바라보면서 <나도 저렇게 한번 늙어 보았
으면> 하는 감탄과 흠포(欽慕)의 정(情)을 누를 수가 없었
다.
 인생을 곱게 늙기는 어려운 일이다. 지혜롭고 성실하게
산 사람만이 곱게 늙을 수 있다. 여자는 늙어지면 얼굴이
추해지기 쉬운데, 남자중에서 늙어질수록 인간적 원숙(圓
熟)의 미가 풍기는 사람을 가끔본다. 암만해도 여자는 젊
었을 때가 인생의 한창이고, 남자는 중년이나 노년에서 더
욱 빛나는 것이 아닐까. 여자의 미는 짧지만 남자의 미는
긴 것 같다. 나는 인간적 원숙의 미를 풍기는 늙은 여인을
별로 보지 못했다.
 내 서재에 시인 타고르의 사진이 한 장 걸려 있다. 뉴델
리에 들렀을 때 사온 것이다. 타고르의 얼굴은 내가 이 세
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얼굴이다. 백발 밑에 넓은 이마, 우
뚝 솟은 코, 영원을 직시(直視)하는 듯한 안광(眼光), 그
리고 긴 수염, 정말 위대한 사색인의 얼굴이다. 철할적 예
지가 풍기는 얼굴이다. 히말라야 영봉을 수십 년 바라본 데
서 온 눈동자가 아닌가. 우파니샤드의 지혜를 수십년 잃고
명상한 데서부터 나온 표정이 아닌가. 불타(佛陀)의 자비
를 간직하려는 의지(意志)에서 발하는 인품이 아닌가. 나는
타고르의 사진을 바라볼 때마다 정신의 힘의 위대함을 느
낀다. 인격의 높이와 혼의 깊이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