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불가사의한 일이 일어나곤 하던 시절에  한 욕심 많은 사나이가 있었다.
그 사나이는 삶과 세상사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다.
그는 "모든 것"을 다 갖고 싶었고, 성취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우선 자신이 갖고 싶고, 되고 싶은 것을
하나하나 꼽아 보기로 했다.

그는 먼저 높은 벼술을 갖고 싶었다.
그는 장관이나 도지사가 되고 싶었고, 가능하다면 임금,그것도
"대황제 폐하"가 되고 싶었다.
그리고 그는 많은 돈을 갖고 싶었다.
창고에 저장_"보관"이 아니라_ 할 만큼 많은 돈과 황금과
다이아몬드를 갖고 싶었다.

또한 그는 많은 땅을 갖고 싶었으며, 좋은 집을 갖고 싶었다.
그 집에는 잘 가꾸어진 넓은 정원과 풀장과 테니스장이 갖추어져
있어야 했다.
페르시아산 카펫을 깔고, 수천만 원짜리 샹들리에를 달고,
갖가지 보석으로 장식한 의자에 앉고 싶었다.
그리고 그는 매일같이 아주 맛있고 진귀한 음식을 먹고 싶었다.
또한 그는 많은 하인들을 거느리고 싶었다.
그리고 그는 아주 비싸고 성능 좋고 안락한 차를,
또는 마차를 갖고 싶었다.

예컨데 롤스로이스 같은.
그는 그런 차를 한 대가 아니라 수십 대 정도 갖고 있기를 바랐다.
또한 그는 값비싼 옷들을 갖고 싶었고, 또 매우 지성적이고
아름답고 세련된 매너를 가진, 그런 한편으로 양순하고 현숙하며
오직 자기만을 사랑하고, 자기만이 세상에 살고 있는
단 하나의 남자인 줄로만 아는 그런 여자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런 여자가 하나가 아니라 아주 많기를 바랐다.
그밖에도 그는 자기 자신이 아주 유능하기를 바랐다.
그는 자신이 탁월한 예술가이기를 바랐고,
또 아주 미남자이기를 바랐으며,굉장한 역사(力士)이기를,
또한 세상 사람들이 자기의 일거수 일투적에 주목해 주기를 바랐다.
또한 그는 아주 유능한 스포츠맨이기를 희망했다.
즉 그는 "스타"가 되고 싶었던 것이다
.
이외에도 그가 바란 것은 많았다.
그러나 그 많은 것들을 다 적을 수는 없는 것이다.
다만 마지막 한 가지,그는 자기 자신의 그 많은 희망을 이루기 위해서
"아주 오래오래"살기를 바랐다는 것만은 적어 놓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자기 자신의 그 수많은 희망을 하나하나 이루어
나가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고작 60년이나70년 정도를 살아서는 그 수많은 희망을
모두 성취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그는 이미 수십 년을 낭비한 뒤였다.
이제 남은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불로장생법을 연구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우선 불로장생을 성취해야만 다른 모든 희망들도 성취할 수 있으리라
여겼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신선술을 배우기 위해서 길을 떠났다.
사실 그는 제법 올바른 방향으로 생각의 길을 잡은 셈이었다.
우선 "불사(不死)_또는 불로장생_를 성취해야만 다른 모든 성취도 가능해진다는
것은 맞는 생각이었으며, 그 불사의 성취를 위해서
신선들을 찾아나선 것도 틀린 생각만은 아닌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신선들을 찾아나선 그 여행을 통해서
매우 희귀한 기회를 잡게 되었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가끔씩, 그야말로 "아주아주 가끔씩 드물게"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기도 하는 법이다.
우리는 흔히 그런 일을 보고는 "기적"이라든가 "불가사의"라고
이야기해 버린다.
또는 "행운"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곧 그 일을 잊어버리게 된다.
왜냐하면 무엇보다도 그 일은 나에게 일어난 일이 아니어서
실감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또 그 일은 쉽게 납득되지 않는 바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예컨데 어떤 사람이 천 원짜리 복권 한 장을 산 덕분에
수십억원을 타게 된 행운을 차지했다고 하자.
이거야말로 기적이요 행운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은 백만 명에 하나도 될까 말까 한 일이다.
그러니 구십구만 구천구백구십구 명은 그저 고개만 설레설레
젖고는 곧 잊어버리게 마련인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기적이 아주 없다고 우길 수는 없다.
심지어는 백만분의 일이 아니라 백만에다 백만을 곱하고 다시
백만을 제곱한 숫자를 분모로 하고 1을 분자로 한 확률의 행운을
차지하는 사람도 있긴 있다.

있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아무리 희귀하기는 하더라도 그런 "행운 중의 행운의 주인공"은
없을 수가 없는 것이다(하긴 그것이"행운"인지 "불운"인지는
이야기를 끝까지 다 들어 보아야 한다)
그런데 바로 이 사나이에게 그 행운이 닥쳐왔다.
그것은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그는 "죽지 않는 사람"이 되었던 것이다.
그에게는 그 어마어마하게 희귀한 확률의 행운이 따랐다.
세상에는 행운을 잡으려고 달려가도 잡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기는 행운으로부터 도망치려고 해도 행운 쪽에서 스스로
기를 쓰고 따라와 주는 사람도 간혹 있는 법인데,
이 경우가 그랬다고 해도 좋을지 모른다.

그것은 실로 "우연"의 기회였기 때문이다.
산천을 두루두루 돌아 신선을 찾아 헤메기도 벌써 10년 세월이
흘렀다.
그 사이에 본 것이라고는 신선을 팔아 사기를 치는 사기꾼들과,
약간의 비법이 있긴 했으나 "불사"까지는 감히 넘볼 수 없는
아주 미미한 수준의 사람들을 만나서, 자기 경지 보다는
까마득히 높은 "이야기"를 들은 것밖에는 없었다.
모두들 "이야기"에는 능통해 있었다.
그러나 그게 "불사"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사나이는 허술한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에 단번에 가짜를 판별해 버렸다.
이제 10년 세월의 떠돎에 그는 슬슬 지치기 시작했다.
머리가 희끗희끗해지고 있었다.
해진 신발 수를 헤아리자면 얼마나 될까?
그리고 그가 걸은 발자국의 숫자는.....또?
닳아버린 지팡이 숫자만 해도 수십 개가 넘으리라 여겨질 만큼
그는 걷고 또 걸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는 신선이 산다는 산으로 가고 있었다.
그때 그는 꽤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하고 있었다.
그 골짜기에는 수백 살이 넘을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고,
가시덤불이 졌으며, 습한 기운이 온몸을 휘감아 왔다.
대낮인데도 캄캄한 밤중인 듯 사방이 어두웠다.
이런 숲은 그로서도 처음이었다.
걸어가면서 그는 점점 이상한 기분에 빠졌다.
이 숲은 예사 숲이 아닌 것 같았다.
그렇지만 불사를 성취하고자 하는 그의 열망이 그의 두려움을
이겨냈다.
그래서 그는 지팡이로 앞길을 헤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이 숲과 골짜기를 지나면 작은 길이 나오고,
그 길을 따라 쭈욱 가면 700살이 넘었다는 "진짜 신선"이
산다고 했다.
그 신선은 그야말로 "진짜 신선"이어서 외모로부터
도골선풍(道骨仙風), 학같이 흰 털이 온몸을 덮고 있으며 ,
대추빛 붉은 얼굴은 어린 아이 피부처럼 곱고,
그 기상으로 말하자면 아침 공기처럼 맑고 저녁 노을처럼 향그러우며
봄바람처럼 훈훈하다는 것이다.

그때였다.
그는 문득 깜깜하여 아무 것도 눈에 보이는 것이 없는 중에
지팡이 끝에 무언지 뭉클! 하고 걸리는 것을 느꼈다.
순간 그는 지팡이 끝에 걸린 그 무슨 생물이 자기에게 엄청난 변화를 줄 무엇이
라는 굉장히 강력한 예감을 받았다.
그 예감은  그의 몸을 뻣뻣이 굳게 할 만큼 강력한 것이었다.
그는 한동안 온몸의 근육이 경직된 채로 서 있어야만 했다.
"나를 구해 주오....나를 구해 주오......."
사람의 목소리 같지는 않았다.
그러면서 사람이 쓰는 언어로 "그 생물"은 신음 소리를 내고 있었다.
사나이는 온몸에 소름이 쭉 돋았다.
그는 두려움에 오던 길을 되돌아 내달았다.
눈앞이 깜깜했기 때문에 그는 나무에  부딪히고 가시에 긁히어서
그나마 엉망인 옷과 몸이 처참할 정도가 되었다.
그래도 그는 마구 달렸다.
꼭 죽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는 한참을 도망친 후에 가쁜 숨을 쉴 겸 좀 앉아 있기로 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시간이 지나자 이제는 무서움이 웬만큼 가셨다.

거기는 비록 어두운 숲이긴 해도 햇살이 조금은 비치는 곳이어서,
괴상한 생물 같은 것은 만날 리도 없었고, 또 만난다고 해도
그리 두려울 것 같지는 않았다.
사실 "미지(未知)"야말로 가장 두려운 것인지도 몰랐다.
그의 지팡이 끝에 뭉클 닿는 그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 때문에
공포를 느낀 것뿐 , 그것이 무엇인지 안다면 별로 무서워할
필요가 없는 것인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런데 사실이 그랬다.
그것은 무서워하기는 고사하고 기뻐해야만 할 행운이었다.
적어도 지금의 그 사나이로서는(나중의 문제는 또 별개이다).
사나이는 좀 쉰 다음에 그 자리에 앉아서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가 그는 갑자기 쿡쿡 웃음을 터뜨렸다.
정신을 좀 차리고 보니 자기가 지나치게 호들갑을 떤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는 중얼거렸다.
"이래가지고서야 어떻게 내가 불사를 성취할 수 있겠는가?"
그는 이런 생각이 들자마자 한껏 용기를 내어 다시 덤부렁듬쑥하고
어두컴컴한 숲 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예의 조금 전의 그 지점에 이르렀을 때였다.
"나를 구해......"
땅밑에서 솟아오르는 것 같은 이상한 목소리가 가늘게 들리고
있었다.
그는 두려움에 이빨이 딱딱 마주쳤지만 간신히 손을 내밀어
더듬어 보았다.
그러자 손끝에 무엇인가 닿았다.
그것은 두더지인 것 같았다.
"너는 누구냐? 대답해 보아라,너는 누구냐?"
사나이는 두더지에게 소리쳤다.
그러자 두더지는 대답했다.
"나를 구해 주오.....나는 벌써 구백 년째 이곳에 이렇게
버려져 있다오.

몸이 꽁꽁 묵인 채 말이오..... 그간 아무도 이곳을 지나가지 않았소.
그리고 나는 도술에 걸린 몸이라, 맨처음에 나를 만난 사람이
나를 구해 주지 않으면 영영 살아날 수 없는 몸이라오...."
말을 할 줄 아는 두더지는 계속해서 하소연을 했다.
"나는 마술을 부릴 줄 아는 도깨비였소.
나는 꽤 심술궂은 성격이였지.
그런데 한번은 산속에서 수행을 하고 있는 수행자 한 사람을
골려주려다가 도리어 그 수행자의 도력에 짓눌려 이렇게
고생을 하고 있는 거라오.....
그 수행자는 나를 두더지로 만든 다음 눈에 안 보이는 끈으로 꽁꽁 묶어서
이 숲 속에 던져 버렸소.
그러면서 그는 말했소.
"네가 만나는 첫번째 사람이 너를 구해 주지 않는다면 너는 정녕
살아날 수 없으리라."
그래서 울먹이며 내가 물었소.
"그가 어떻게 해주어야 살아날 수 있습니까?"
그러자 그가 대답했소.
"이 산 꼭대기에 있는 보리수 잎을 따다 먹으면 너는 살 수 있다."
그러니 여보, 제발 내게 이 산꼭대기에 있는 보리수나무에서 잎을
따다 주시겠소?
내가 도술에서 풀려난다면 당신의 부탁은 무엇이든 다 들어주겠소."
사나이는 웃었다.
"흥! 무엇이든 다라고? 그렇게 재주가 좋다면 먼저 자기 자신부터
도술에서 풀려나실 일이지!"
"그건 안되오." 하고 두더지는 말했다.
"꼭 나를 만난 첫번째 사람이어야 하는 게 법칙이오.
그리고 나는 산꼭대기에 갈 수가 없소.
보리수나무 곁으로도 갈 수가 없고요."
"그렇다면 좋다! 넌 내게 한 약속을 절대로 지킬 수 있겠느냐?
난 그걸 알고 싶다. 넌 "무엇이든"할 수 있단 말이냐?"
"그렇소. 나 자신을 이 "묶음"에서 풀어낼 수 있는 일을 빼고는!
그것만 제외한다면 나는 당신에게 나와 꼭같은 능력을  줄 수도
있소.그러니 제발....."
"네 능력은 무엇무엇이냐?"
"먼저 나는 변신술에 능통하오.그리고 나는 이미 구 백년이
넘게 살고 있소.........."
"알겠다!"
그는 소리쳤다.
그는 신선술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도 불사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이 기뻤다.
그러나 내색은 하지 않았다.
그는 도깨비와 단단히 약속을 했고, 있는 힘을 다해서
산꼭대기에 올랐다.

과연 거기에는 수천 살은 됨직한 보리수나무가 서 있었다.
산꼭대기에는 제법 추운 곳이어서 보리수나무는
이제 잎이 얼마 남지 않고 다 진 상태였다.
사나이는 나뭇잎을 따서 소중하게 품속에 간직했다.
그리고는 너무나 피곤해서 그 자리에서 잠시 쉬기로 했다.
어느 사이에 그는 잠이 들었다.

그는 잠 속에서 꿈을 꾸게 되었다.

그곳은 처음 보는 아름다운 숲 속이었다.
아주 평화로운 곳이었고, 매우 신비한 곳이었다.
갖가지 나무들이 잘 어울린 숲 속에서 여러 가지 동물들이 놀고 있었다.
공기는 맑고 상큼했으며, 꽃들은 불꽃놀이라도 하듯 눈부신 자태를 뽐내고 잇었다.
그리고 숲 속에는 많은 수행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혹은 나무밑에 앉아서,혹은 암굴에 틀어박혀서
수행을 하고 있었다.
그것을 보면서 사나이는 중얼거렸다.
"도대체 저이들은 무슨 수행을 하고 있느 것일까?"
왜냐하면 그들의 수행하는 양을 보니  신선술처럼 불로장생이
목표인 것 같지는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 수행자들 중에는 몸이 쇠약하거나 병에 걸링 사람도 있었다.
심지어는 당장 오늘이라도 숨이 끊어질 듯 중병을 앓고 있는
사람도 없지 않았다.

불로장생이 목표라면 그들은 분명 실패한 것이어야만 했다.
그런데도 그들의 표정은 지극히 안온했고,
지극히 평화로웠고, 지극히 고결했다.
그들은 아주 고요한 마음으로 병고(病苦)와 죽음
그 자체를 맞아들이는 것 같았다.
사나이는 중얼거렸다.
"알 수 없는 일이군!"
그 순간 사나이는 잠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자기가 꿈을 꾼 것을 알았다.
사나이는 자기가 왜 그런 꿈을 꾼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아무튼 사나이는 나뭇잎을 가지고 도깨비에게 갔다.
그리고 그 도깨비에게 나뭇잎을 건네며 다시 한번
다짐을 받았다.
"자 이것이 보리수 잎이다.너는 이것을 가지고 그 결박에서
풀려 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너를 실로 구백 년 만에 구해주었다는 이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물론이고말고요!"
도깨비는 소리쳤다.
그리고는 보리수잎을 받아서 으적으적 먹기 시작했다.
그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흰 연기가 솟아오르더니 도깨비가
두더지의 모습에서 본래의 모습으로 바뀌는 것이 아닌가.
"그대여,참으로 고마웠다!"
도깨비가 하는 말이었다.
이제 어둠에 제법 익숙해진 눈으로 살펴보니 도깨비의
온몸은 갈색털에 싸여 징그럽기 짝이 없었다.
그리고 매우 역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러나 그건 아무래도 좋은 일이엇다.
사나이는 말했다.
"나를  죽지 않는 사람으로 만들어 다오!"
아,이야말로 얼마나 간절하게 바랐던 것인가.
드디어 사나이는 "불사"를 성취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불사라니?
도깨비도 사나이의 요구에는 어안이 벙벙해지고 만 것 같았다.
그거야말로 도깨비 자신이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요구였기 때문이다.
도깨비는 말했다.
"그대여, 그것은 실로 엄청난 요구이며, 또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복된 요구도 아니다.
그러니,"불사"가 아닌 다른 것을 원하는 것이 어떻겠느냐?"
사나이는 화가 나서 외쳤다.
"너는 그 결박에서 풀려나자 이제 딴소리를 하는구나!
나는 단지 불사를 원할 뿐이다.
그밖의 다른 어떤 것도 나는 원치 않는다.
불사가 얻어진다면 다른 무엇이든 다 얻을 수 있을 테니까!"
그러자 도깨비는 말했다.
"알겠다! 그러나 후회하진 않기 바란다!"
도깨비는 곧 알쏭달쏭한 주문을 외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그를 자기의 팔에 끼더니 어디론지 낯선 땅으로
이동해 갔다.
거기에는 거뭇거뭇한 빛깔의 조그만 연못이 하나 있었다.
"이 연못 속에 들어가 목욕을 하라.
그러면 네 육체는 "영원히"죽지 않게 되리라!
그러나 내가 간절히 다시 한번 비노니 후회하지 말기를
바란다........
"후회라니! 나는 이 기회를 잡기 위해서 10년 세월을 바쳤다!
이제 그 소원이 성취되는 마당이다.
그런 당치 않은 걱정은 해주지 않아도 좋다!"
사나이는 연못 속으로 옷도 벗지 않은 채 뛰어들었다.



그렇게 해서 그는 "죽지 않는 사나이"가 되었다.
그는 절대로 죽지 않았다.
가령 누가 그의 심장을 예리한 칼로 난자한다고 해도 그는 다시금 살아났다.
또한 그는 어떤 독약을 마신다 해도 죽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는 매우 만족했다.
이제부터 그는 그가 원하는 "모든 것"을 차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금방 엄청난 부자가 될 수 있었다.
그는 결코 죽지 않는 사나이였기 때문에 그가 원하는 것은
곧바로 그의 것이 되었다.

예를 들어 그가 어떤 부자네 집 안방에 들어가 앉아서
"오늘부터 이 집은 내 것이다!"하고 말하면 그 부자는 하인을 불러
이 무례한 난입자를 죽을 만큼 두들겨 패서 내쫓게 마련이었다.
그러나 어쪄랴!
그는 다시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고는 지난번과 꼭같은 방법으로
"오늘부터 이 집은 내 것이다!"고 외치는 것이다.
그러기를 두번 세번 네번..........지치는 쪽은 부자 쪽이게 마련이었다.
하는 수 없이 부자는 그 집을 포기하고 떠나야만 했다.

그는 세상에 아무 것도 두려울 게 없었다.
그리고 그 누구도 부러울 게 없었다.
그는 병든 사람이나 늙은 사람을 보아도 아무런 감정이
일지 않았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은 동정심이 일기도 하고,
나도 언젠가는 저렇게 되겠지 하는 마음에 쓸쓸한 감정을 일으키기도
하는 법인데 이 사나이의 경우는 달랐다.
왜냐하면 그는 결코 "죽지 않는"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병자를 보면서 그들을 바보라고 느끼기가 예사였다.
또 노인들을 보면서 한심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의 마음은 그렇게 메말라갔다.

그는 세상의 법률이나 예의범절 따위를 거들떠 보지 않았다.
그는 교차로에서 파란 신호등을 기다리지도 않고 그냥 성큼성큼 제 맘대로
건너가기가 일쑤였다.
그래도 아무도 그를 제지하거나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다.
그의 소문은 온 나라 안에 자자하게 퍼졌으므로 사람들은 그를 슬슬 피할 뿐이었다.

심지어 그는 남의 아내를 차지하는 일까지 잇었다.
예컨데 그의 마음에만 들면 그 여자는 곧 그의 차지가 되는
거나 같았다.
그가 " 이 여자는 나의 것"이라고 선언하게 되면
그의 부모나 남편이 아무리 저항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것은 부자네 집을 빼앗는 것과 동일한 이치에서 그러했다.
그러니 그랬을 때 그들이 취할 수 있는 방법이란 
그저 그의 눈앞에서 도망쳐 버리든가, 포기 하든가,
죽어버리는 길밖에는 없엇다.
설사 그를 경찰에 고발한다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법률조차도 그를 어찌할 수는 없엇기 때문이다.
그에게  가할 수 있는 가장 큰 형벌은 사형일텐데, 그것은
그에게는 형벌이 될 수 없는 하나의"장난"에 불과했다.
그래서 그는 세상 사람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하나하나 차지해
나가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그가 맨처음에 꼽아보았던 것들을 하나하나
차지했고, 또 성취했다.

그는 천 년, 만 년 이상을 살았다.
그 기나긴 세월 동안 그야말로 "모든 것"이 되어 보앗다.
그는 기나긴 시간 동안에 일곱 번이나 황제가 되었고,
열두 번이나 대장군이 되었고, 서른 두 번이나 억만장자가 되었고,
일흔 일곱 번이나 세상에서 제일 가는 미녀를 아내로 맞이했고,
일백서른네 번이나 한 시대를 풍미하는 예술가가 되어 보았다.
그뿐이 아니다.
그가 되어 보고 해본 일은 이루 셀 수도 없었다.
한 사람이 수천 번 태어나야만 해볼 수 있는 일을,
그리고 그래야만 느낄 수 있는 성취감을 그는 맛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는 자기의 대궐 같은 집에 혼자 앉아 있었다.
그는 무심코 중얼거렸다.

"아, 이 대단한 집이 내게 무엇이란 말인가?"

그 집은 무려 침실이 삼백 개나 되는 대저택이었다.
그러나 그는 잠잘 때 그 수많은 방을 다 쓰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단지 방 한 칸에서 잘 수 있을 뿐이었다.
그는 곰곰이 자기의 생애를 돌이켜 보았다.
이제 너무나 오래 살았기 때문에 자기의 생애를
대강이나마 기억해 낸다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그것은 개인의"생애"라기보다 차라리 "역사"라고
해야 할 기나긴 세월에 걸쳐 있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러나 그 기나긴 세월이 결국 그에게
"무엇"이었던가?
그는 자기의 삶에 대해 "의미"를 묻기 시작했다.
그래서 어쨌단 말인가?
그래서 결국 내가 얻은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그래서.......그래서....
그에게 한번 밀어닥친 그런 의문은 조금씩 조금씩
그를 붙들어 떨어져 나갈 줄을 몰랐다.
세상 모든 사람은 그를 두려워하고 있었으므로
그를 보면 슬슬 피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래서 그에게는 진정한 친구가 없었다.
그는 고독햇다.
그리고 그는 그렇게 오래오래 살면서 그렇게 수많은 성취를
 해냈으면서도 진정 자기의 삶의"의미"는
알지 못하고 있었다.


"아아.............................."
그는 부르짖었다.
그는 비로소 그 옛날 자기에게 불사를 준 도깨비가
한 말을 떠올렸다.
그 도깨비는 말했던 것이다.
"후회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렇다, 그는 후회하기 시작햇다.
그렇게 수많은 성취에도 불구하고 그의 마음은 조금도
진보되지 못한 채 그대로 있었다.
그는 엄청난 것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아직도 그는 배가 고팠고,
갈증을 느끼고 있었다.
그 배고픔괴 갈증으로 말하자면 그가 맨처음 불사를
구하던 때나 지금이나 아무 차이가 없었다.
웬지 모르게 가슴을 훑고 지나가는 공허함______________
삶은 하나의 쳇바퀴 놀음에 지나지 않으며,
이런 부질없는 소유와 탐욕의 행진은 덧없는 꿈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막막한 감정이 그의 마음을
휩쓸었다.

그랫다.  그는 아직도 행복하지 못햇다.
그는 아직도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라도 자기의 불사를 밑천으로
열심히 노력하면 지금보다 훨씬 더 성취에 이를 수도 있었다.
그러면 그는 매우 만족하고 매우 행복해질 것이다.
그러나 그는 수천 번의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었다.
그런 성취가 주는 소유의 만족,
탐욕의 만족이 결코 "불멸의 행복"은 아니라는 것을.
그런 만족은 그 순간뿐이고, 곧 예의 그 "배고픔"과"갈증"이
다시 일어나서 그를 제3, 제4 ,제5...........의 욕구 쪽으로
밀어낼 것이 뻔했다.
그것은 예컨데 순환열차와도 같은 것이었다.
순환열차는 제1역에서 제2역으로 나아간다.
승객은 그동안 제2역에 희망을 걸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제2역에 도착하면 승객은 만족해 한다.
그렇지만 곧이어 갈증과 배고픔이 오고
그래서 열차는 다시 제3역을 향해서 떠나야 한다.
승객은 제3역에 도착하게 되면 "영원한 행복",
"불멸의 만족"이 있을 거라고 기대한다.
그리고 이윽고 제3역에 도착한다.
그러나 만족은 잠시뿐이고 다시 갈증과 배고픔이 엄습한다.
그러면 그들은 다시 제4역으로 출발한다................

그 사나이의 삶이 바로 그랬다.
그리고 그는 열차를 한바퀴 순환시킨 뒤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셈이었다.
"자,이것으로 나의 쳇바퀴 놀음은 끝났다!"
그는 허무하게 중얼거렸다.
그는 자기의 삶이 완전한 실패였음을,
자기의 삶은 아무런"의미"도 "보람"도 없었음을 뼈저리게 느꼈다.
도대체 남들보다 100배 이상 살았다는 것이 그에게 무엇을 주었던가.
그는 보통 사람들의 생활을 처음으로 세심한 관심 속에서
지켜보았다.
그것은 희비애락으로 점철된 것이었고,
마침내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었다.
그러나 죽음은 무엇인가?
그들에게 있어서 죽음은 알 수 없는 무엇이었다.
그것은 공포이기도 했고 , 휴식이기도 했고,
신비이기도 했다.
그런 죽음이 그들의 삶에 도리어 매우 신비스런 빛을 준다고
그는 느끼기 시작했다.

그는 차츰 삶은 죽음으로 끝날 수밖에는 없으며,
또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멈추지 않는 순환열차는 차라리 공포라고 해야 옳았다.
그 공포는 죽음보다도 더 큰 공포인 것이다!
죽지 않다니?
그는 자기의 불사를 두려워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죽을 수가 없는 사나이였다.
이 차이, 즉 "죽지 않는 사나이"와 "죽을 수 없는 사나이"의
차이는 컸다.
전자는 죽고 싶지 않는 사람에게 있어서 최고의 꿈이었다.
그러나 후자는 죽고 싶어진 사람에게 있어서 최악의 저주였다.
그는 이제 휴식이 그리웠다.
그는 이제 더 이상 그 아무 것도 "되고 싶지"않았다.
"나는 이제 그 아무 것도 되고 싶지 않아!"
그는 절규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살고 싶지도 않아!"
그는 꺼이꺼이 울었다.
그는 너무나도 막막햇다.
그래서 그는 여러가지 방법으로 자살을 시도해 보았다.
그러나 그 시도는 당연히 헛일로 돌아가고 말앗다.
그는 자신이"죽을 수도 없는"존재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고, 그 깨달음은 그에게 형언키 어려운 공포와
함께 기묘한 전율을 느끼게 하였다.
"아아............................"
그는 탄식햇다.
그는 쉬고 싶었다.
그는 죽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그럴 수가 없었다.
그는 평안스럽게 임종을 맞는 사람들을 보면서 진심으로 그들을
부러워하였다.
심지어는 비참하게 죽어가는 사람에게서조차 부러움을 느꼈다.
죽을 수만 있다면!
영원히 깨지 않는 잠을 잘 수만 있다면!
그러나 그의 고뇌를 이해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람들은 그의 그런 고뇌를  가볍게 여겼으며,
내심 그와 자기의 삶을 바꾸고 싶어들 하였다.
그럴 때 그는 말했다.
"나의 삶은 저주스러운 것이라오.
나 같은 사람이 되다니?
차라리 나는 돼지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나의 불사를 내팽개치고 싶다오!
살고 있는 한 휴식은 없다오.
살고 있는 한 영원한 평화도 절대적인 만족도 없다오."

그러면 사람들은 그의 말을 하나의 유우머로 받아들알 뿐이었다.
그는 너무나 막막한 나머지 이제는 아무하고도 말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자기의 집에서 모든 사람들을 내보내  버렸다.
하인이고 누구고 남아 있지 못하게 하였다.
그는 그들에게 황금을 듬뿍듬뿍 나누어 주었다.
그들은 뛸 듯이 기뻐하며 그에게 절을 수십 번씩이나 한 뒤에
그를 떠나갔다.
그에게 있어서 황금은 이제 조금도 값진 것이 아니었다.
그는 오직 휴식만을 원했다.
그 이외에는 그 아무 것도  그에게 필요한 것이 없었던 것이다.

그는 하루 종일 집안에 틀어박혀서 지냈다.
맛있는 산해진미도 이제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멋지고 세련된 옷도, 아름답고 애교 넘치는 미인도
그에게는 아무 필요가 없었다.
높은 지위도 필요가 없었고, 인기 또한 공허한 메아리 같은
것이었다.
시도 음악도 아름다움도 이제 그에게는 아무런 감흥을 일으키지 못했다.
무의미,무의미,무의미....................................
그의 눈에 비치는 모든 것은 삶의 무의미를 생각케
해줄 따름이었다.




그렇게 세월이 또 흘러갔다.
1년,2년,3년...........10년,20년,30년.........100년,200년,300년.............
차츰 그의 마음은 화석처럼 되어 갔다.
그는 마치 투명한 유리벽과 싸우는 것 같았고,
눈에 않보이는 적과 겨루는 것 같았다.
그는 이제 몸부림치기에도 지쳤고,지치는 것에도 또한 지쳐서
그저 산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닌 채 "살고"있었다.
그러니 그 "삶"이란 "죽지 않았다"는 뜻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아니, "죽지 않았다"가 아니라 "죽지 못했다"는 것이
옳은 표현이리라.
그의 집은 이제 수백년간 돌보지 않아서 허물어지고 낡았다.
군데 군데 흙뭉치가 떨어지고,
거미가 집을 짓고,까치가 동우리를 틀었으며, 박쥐가 웅크렸다.
잡초가 지붕 위에서 자랐다.
주인 없는 개와 고양이가 부엌에서 어슬렁거렸으며
쥐들이 찍찍거렸다.
밤이면 철모르는 부엉이가 부엉부엉 울었고,
말없는 달님이 "의미도 없이"부드러운 빛을 내려 부었다.
별들은 수천 년 전과 다름없이 빛났다.
그러나, 그러나 그에게 그것들이 정녕 무엇이란 말인가?

그리고, 어느 때부턴가 그의 집은 겨울에 파묻혔다.
눈이 쉴새없이 내렸다.
그리고 칼날 같은 바람이 불어서 그나마 남아 있던
문짝들을 내동댕이쳤다.
나무들도 추위에 견디다 못해 얼었고,
기분 나쁜 동물들조차 얼어죽거나 도망쳐 버렸다.
그는 하염없이 내려 쌓이는 눈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눈은 그의 집에만 내리고 있었다.
담장 밖은 달랐다.
그곳은 겨울이 아니었다.
담장 밖 하늘과 땅은 지금 한창 꽃이 피고 새가 우짖는
봄이었다.
신록은 건강한 기쁨을 뽐내고 있었고, 비단결 같은 하늘에는
솜털구름이 피어나 세상을 축복하고 있었다.
그러나 담장 안 그의 집은 꽁꽁 얼너붙은 겨울 한가운데에
있었다.
그는 추위에 오들오들 떨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그는 두려워하지도 않았고 괴이하게
여기지도 않았다.
그는 이제 지칠 대로 지쳐있어서 , 두려움이나 괴로움조차도
느낄 수 없었다.
그는 거의 미칠 지경에 이르러 있었다.
그때 그는 갑자기 무슨 뜨거운 것이 두 빰을 적시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눈물이었다.
무려 칠천 년 만에 흘려보는 눈물!
그의 두 빰 위로 흘러내린 그 눈물은
곧 영하 일백 칠십 도가 넘는 추위에 얼어 붙었다.

그러나 그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아아, 그의 가슴은 가늘게 떨리기 시작하였다.
나는 사람인 것이다!
사실 이 눈물 한방울은 그에게 있어서 너무나도
값진 것이었다.
그는 이제 비로소 언어가 아닌,
개념이 아닌,
진실 그것으로서의 삶의 진정한 값을  어렴풋하게
느끼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는 불현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십 년 동안 한 자리에 앉아 있었던 그의 엉덩이는
 바닥에 눌러 붙어 있었기 때문에 살점이 떨어져 나갔다.
그러나 그것조차도 상관없었다.
그는 문득 "그 무엇인가" 를 느끼고 있었고,
거기에서부터 자신의 삶은 진정한 제 궤도를 돌게 될
것이라고 느꼈다.

그때부터 그의 태도는 바뀌었다.
무언지 모를 힘이 솟았다.
왜 그랬을 까?
아직까지도 그에게 남아 있었던 눈물의 신비였을까?
아니면 그가 인간이었기에 그것이 가능했을까?
아무튼 그는 집안에 쌓인 눈들을 치우기 시작햇다.
그는 집에 불을 피웠고, 눈을 녹였고,부서진 집을 수리했다.
정원의 나무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그래서 차츰차츰 그의 집은 제모습을 되찾아갔다.
그러자 어디선지 다시 고양이가 찾아왔다.
새들도 찾아오기 시작했고, 드디어 나무들도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7천  살이나 된 그는 마치 열일봅 살 소년인 것처럼
가슴이 뛰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는 집안을 치우고 있다가 문득 자기 앞으로 날아오는 비둘기 한 마리를 보았다.
비둘기는 무엇에 쫓기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를 구해 주오.......나를 구해 주오......."
비둘기가 지르는 외마디 소리였다.
그는 문득 그 옛날 검은 숲에서 들었던 도깨비의 소리를 연상했다.
비둘기는 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는 얼른 약을 찾아 발라준 다음 붕대로 상처를 동여매 주었다.
그의 가슴은 웬일인지 마구 뛰고 있었다.
"이게 웬일이냐? 무슨 일이라도 있었느냐?"
"사냥꾼이 쏜 총에 맞았답니다. 나를 구해 주세요.........
지금 그가 나를 뒤 쫓고 있답니다........"
"그래, 알겠다."
그러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매우 사나워 보이는 사내 하나가
총 한 자루를 메고 나타났다.
그는 위압적인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비둘기 한 마리를 보지 못했소?"
그는 거짓말을 하고 싶진 않았다.
"보았소이다."
"그건 내 총에 맞아 떨어진 놈일 거요.그놈을 내게 주시오."
"그건 안될 말이오."
"뭐요?"
"가엾은 비둘기를 왜 총으로 쏜단 말이오?
비둘기는 여기 있소.
그러나 이 비둘기를 당신에게 돌려드리진 않겠소.
이건 나의 최소한의 양심이라오."
"양심? 흥!"
사냥꾼은 비웃으며 "좋소,그러나 내 한 가지 묻겠소.
당신이 가엾은 비둘기에게 양심의 동정을 보내는 것은
나도 이해해 드리겠소.
그렇지만 나는 사냥꾼이오.
사냥꾼은 동물을 잡지 않으면 살 수 없소.
그러니 당신이 비둘기를 살려주는 일은, 사냥꾼인 나와 내 처자식에게
가는 밥그릇을 빼앗는 셈이오.
그래도 당신의 동정이 꼭 올바르기만 할까요?"
사나이는 갑자기 대답할 말이 없었다.
그는 사냥꾼의 말이 일리가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자, 어찌하려오?"
사냥꾼이 채근했다.
사나이는 비둘기를 바라보앗다.
비둘기는 와들와들 떨고 있었다.
그는 망설였다.
그러다가  드디어 사나이는 큰 결심을 하였다.
그는 침을 꿀꺽 삼키고 나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좋소! 그러면 비둘기 대신 내가 내 살을 베어드리도록 하겠소!"
그 말에 사냥꾼은 처음에는 질겁을 했다.
그러나 곧 잔인한 미소를 지었다.
그도 어떤 결심이 선 모양이었다.
"그래요? 거 참 굉장한 자비심이구려!"
그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품속에서 저울을 꺼냈다.
그래서 저울의 한쪽 편에 비둘기가 올려졌고, 사나이는
스스로 허벅지의 살을 도려내어 다른 한쪽 편에 얹었다.
사나이는 죽지 않는 사나이기는 했지만 고통을 느끼지 않는
사나이는 아니었으므로 견딜 수 없는 통증에 도저히
참을 수 없을 것만 같았으나 비둘기의 착하고 순한
눈빛을 바라보며 자신의 고통을 달랬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저울은 비둘기 쪽으로 기울었다.
"더 도려내 주셔야겠는 걸요!"
잔인한 사냥꾼이 채근했다.
하는 수 없이 사나이는 자기의 다른 쪽 허벅지 살을 도려내어
그 위에 보탰다.
그랬는데도 저울대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당신의 자비심이 고작 그 정도란 말이오?
그런 주제에 감히 자비를 운운하다니!"
사냥꾼의 호통이었다.
사나이는 드디어 결심을 했다.
그는 생각했다.
"그래! 바로 그것이다! 
나는 그동안 얼마나 죽기를 바랐던가!"
그는 성큼 저울대 위로 올라섰다.
그러자 그제서야 저울은 수평을 이루는 것이었다.
놀란 사냥꾼이 소리쳤다.
"당신은 정말로 몸을 바치려는 거요?"
"그렇소! 나도 내 평생 처음으로 값진 일을 하고 싶다오.
나는 칠천 년이나 살았소.
나는 죽어도 여한이 없소이다.
아니,나는 그동안 얼마나 죽기를 바랐는지 모른다오.
제발 나를 이 땅에서 떠나도록 해주시기를............................"
사나이는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그러자 사냥꾼은 그가 그 유명한 "불사의 사나이"인 줄을 알고
황망히 그 앞에서 도망쳐 사라져 버렸다.


그때였다.
상서로운 안개가 일었다.
미묘한 음률이 하늘로부터 은은하게 흘러 들기 시작햇다.
오렌지꽃 향기 같은 신비스런 기운이 바람결에 실려 왔고,
그 상서로운 안개 속에서 비둘기는 사라져 버리고
어디선가 거룩한 음성이 부드럽게 공기를 진동시켰다.

"그대여,이제 알겠느냐?"

가슴 밑바닥에 질펀하게 고인 고독과 절망과 갈증과 배고픔을 단번에
씻어줄 만큼 크나큰 자비와 광명에 넘치는 음성이었다.
사나이는 자기도 모르게 그 자리에 엎드렸다.
그의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그대여,이제 일어나 가라.
지금 "위대한 깨달으신 이"가 세상에 출현하셨느니라.
그분은 일체를 이기신 분이며,
일체를 아시는 분이니라.
그분은 삶의 덧없음을 꿰뚫으신 이이며,
만상(萬象)의 유한성을 직시하신 분이시니라.
그분은 하늘 위나 하늘 아래에 더없이 높으신 이이며,
삶의 궁극적 의미가 무엇인지,
삶의 진정한 모습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를
가르치시느니라.

그대여 , 삶은 욕망을 따르는 그것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 욕망에의집착을 여의는 것을 통해서 승화되느니라.
인간은 죽음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죽음의 더럽고 추악한 모습을 성화(聖化)시킬 수 있을 뿐이며,
그의 권능을 무화(無化)시킬 수 있을 뿐이니라.


그대여, 너의 진정한 면모는 어디 있느냐?
지금의 너는 네가 아니며,
참된 너는 너의 눈, 너의 입, 너의 코, 너의 혀, 너의 몸과
너의 뜻이 다 사라지고 나면 드러나니라.
마치 구름이 사라지고 나면 밝은 해가 저절로 드러나듯이.
그것은 허공처럼 깨어지지 않으며,
보름달처럼 맑고 높으며,
영원히 빛나는 진리이니라.

그대여, 깨달으신 이가 세상에 나타나시기는 참으로 귀한 일!
그것은 우담발화가 삼천 년 만에 꽃을 한번 피우듯이 드문 일이며,
일천 년 만에 한번 물 위로 올라온 눈먼 거북이가
막막한 바다에 던져진 널판지에 우연히 목을 꿰는 것처럼
희귀한 일이니라.
깨달음이 있음으로써 너의 떠돎과 갈증과 배고픔은
비로소 순환의 윤회를 그칠 수 있느니,
그것은 살아 있는 모든 것이 마땅히 돌아가야 할
영원한 고향이니라.

그대여,어서 가라, 그분에게로!
거기에서 너의 수천 년에 걸친 방황은 끝나게 되리라!"

사나이는 기쁨에 겨워 하염없이 울었다.

그 뒤에 사나이는
"위대한 깨달으신 분"에게서 가르침을 받고
깨달음을 얻어
드디어 죽음과 삶을 초월한 경지에 들었다.
그러나 그 뒷이야기는 더 이상 말기로 하자.
그것은 이야기의 문제가 아니라
깨달아 맛보아야 할 실천의 문제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