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머나먼 나라에 아주아주 아름다운 항구 도시가 있었다.
꿈꾸는 듯 파아란 하늘, 짙푸르게 넘실거리는 파도,
벽돌색 집들,그리고 돛을 날리며 모여들었다가 되돌아 가는 배,배,배.....
그뿐이 아니엇다.
무리지어 날으는 갈매기떼와 건장한 몸매에 근육도 실한 어부들이,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림처럼 아름다운 해변이 있었다.

그러나 이 도시는 한편으로 그와는 매우 이질적인
(그러면서도 그것들을 받쳐준다고 볼 수 있는)
그런 면모도 함께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이 아름다운 항구 도시의 이면을 두고 하는 말이다.
처음에 이 도시에 온 관광객들은 으레껏 도시 앞얼굴의 아름다운
모습에 감탄을 늘어놓게 마련이었다.
그러나 세상 모든 것들이 그러하듯이 이 항구 도시 또한
보이지 않는 구석에는 겉모습과는 매우 다른 면을 지니고 있었다.
그 도시의 아름다운 전면을 젖혀 두고 뒷면으로 가보면
거기에는 비애가,아픔이,더러움이,끈적끈적한 욕정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즐비한 선술집에는 비린내와 고기 굽는 냄새와 알콜 냄새가 넘쳤고,
왁자한 선원들의 상소리가, 시비와 격투가,유혹과 속임수가,
거짓말과 허세가, 사내와 계집의 어우러짐이,
검은 돈의 오고감이 잇엇다.
그것들은 대개 밤의 붉은 등불 아래서, 혹은 음습한 골목의 막다른
구석에서.....은밀하게 또는 노골적으로 이루어졌다.
그것은 어쩌면 지옥의 풍경이었거나,적어도 연옥(煉獄)의
그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거기에서 사람들은 눈물과 한숨을, 그리움과 서러움을,
삶의 덧없음을 울었고, 이 더러운 곳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자기
자신들의 처지를 탄식하였다.
그들은 모두 뜨네기들이었다.
대게 머나먼 나라에서 돈 때문에 떠밀려 온 가련한 이들이었다.
그리고 하룻밤, 혹은 이틀이나 사흘을 묶고 나면 다시 거친
파도를 향해서, 널판지 한 장 밑이 곧 지옥인 배를 타고 떠나갔다.

그래서 그곳은 매우 기묘한 도시엿다.
그곳은 밤과 낮처럼 뚜렸한 두 세계를 함께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잘 다린 옷을 깨끗하게 차려 입은 선장과 귀부인과 시장과
관료들과,선주들이 연출하는 정갈하게 잘 다듬어진 도시의
이미지는 교양과 미의 극치라 할 만했다.
그리고 그것들은 맑고 푸른 하늘과 바다,그리고 귀부인의
옷자락처럼 우아하게 드리운 백사장과, 요트와.......
그런 것들을  무대 삼아 연출되었다.

거기에는 구정물 한방울 묻지 않을 높은 품위가 항상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잔잔히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이야기한 것처럼 그 뒷면에는 그런 "천국"과는
전혀 무관한 사람들이 연출하는 갖가지" 더러움" 이 악취를
풍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 도시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두 부류로 나누어졌다.
"밝은 사람들" , 그리고 "어두운 사람들" 로.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은 우선 겉모습에서부터 쉽게 구별이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 벽을 쌓고 살았다.
그래서 인사조차도 잘 나누려 들지 않았다.
하긴 서로 아는 사이인 경우조차도 드물었을 뿐만 아니라,
서로가 상대방을 자기와는 무관한 사람으로,
혹은 가까이해서는 큰일날 사람으로 생각하엿다.
이 금기를 어기기라도 하는 때에는 그들은 일종의 불안을,
혹은 평생을 씻어도 지워질 것 같지 않은 더러움을 묻힌 것 같은
느낌을 받곤 했다.

그런 이 도시에, 어느 날 아침 그분이 나타나셧던 것이다.
그것은 참으로 놀랍고 이상스러운 사건이었다.
그분은 중키에 푸른 눈을 한 청년이었다.
머리는 어깨까지 늘어뜨리고 수염은 덥수룩하게 기르고 있었으며,
옷은 긴 천으로 몸을 휘감은 정도의 그런 모습이었는데,
아마도 옷이라곤 그것 하나뿐인 것 같았다.
신발은 가죽신이었다.
그런데 거의 해진 것으로 보아 꽤 오랫동안 여기저기를 걸어다닌
것을 알 수 있엇다.
그리고 지팡이를 하나 들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그분의 그런 차림새가 아니었다.
먼저 그분의 눈이었다.
그것은 뭐라고 형용하기 어려운 신비한 눈이었다.
아아, 뭐라고 하면 좋을까.......................
그 눈을 바라보는 순간 사람들의 가슴에는 철렁 하는 소리와
함께 까닭없는 서러움이 뭉클 솟아나게 되는.............
그런 눈이었다.
그것은 파아란 호수처럼 맑은 눈이었으나,
동시에 아름아름한 물기가 어린 눈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바다의 눈이었다.
그래서 그 눈은 머나먼 수평선과 같은 아련한 꿈이,
이상이 그득히 실려 있었다.

처연한 눈이었다.
그리고 고독한 눈이었다.
사랑과 자비의 눈이었고,동시에 전율과 격정(激情)의 눈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분의 거동 또한 보통 사람들과는 아주 달랐다.
걸으면서 그분은 끌려가는 망아지처럼
예의 그 슬프디 슬픈 눈빛으로 사람들을 바라보거나
때로는 걸은을 멈추고 가만히 무엇을(또는 누군가를) 응시하곤 하였다.
그러다가.....다시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것이었다.

그분이 어디서 왔는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그분이 이 도시에 처음으로 모습을 나타낸 것은
어느 맑은 날 아침,
시청 앞 광장 분수대였다는 것만이 알려진 단 하나의 사실이었다.
그날은 휴일이었으므로 거기엔 부지런한 시민들이 나와서
혹은 산책을,혹은 담소를,혹은 가벼운 운동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에 그곳에 모여 있던 수백 명의 사람들은
범상치 않은 어떤 기운을 동시에 느꼈다.
그렇다.
그 어떤 신비한 힘이 자신들의 옷자락을,뒷덜미를,어깨를,
발길을 당기는 듯한 그런 느낌을 동시에 받앗던 것이다.
사람들은 하나 둘씩 그 힘을 따라 시선을 돌렸고,
몸을 움직였고, 마음 또한 그에게 이끌렸다.
그 힘의 진원지는 바로 그분이었다.
그 위대한 이에게서 신비스러운 힘이 흘러나오고 있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했다.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분에게로 끌려갔다.
그분은 천천히 걸음을 옮기더니 분수대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예의 그 처연한 눈빛으로
앞을 응시하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은 하나 둘씩 그분 곁에 모여들기 시작햇다.
열 명,스무 명, 한 시간쯤 지났을 때 그분 주위에는 무려
수백명의 사람이 모여들었다.
사람들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도 말이 없었다.
다만 그분의 행동 하나하나를 뚫어져라 주시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분 또한 별 말이 없었고,
자신의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을 보고도
별로 놀라지 않았다.

이상한 것은 거기에는 매우 영감에 가득 찬 공기가 그들을
감싸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차츰 자신들이 매우 귀한 경험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느꼈다.
그들은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어떤 마음을 다시금 생각하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부모에게 손을 잡히운 채 신 앞에 나아가서
주님을 찬미하던 일,부처님 앞에서 불공을 드리던 일,
그리고 자기의 작은 잘못까지도 신 앞에 회개하고
눈물 흘리던 일..........
그러나 언제부턴가 이 도시의 사람들에게는 "믿음"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런데 지금 그분 앞에서 오래오래 잊고 있었던
그들의 믿음이 불현듯이 되살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들이 차츰 술렁거렷다.
그들은 그분을 틀림없는 "예언자"이거나
"거룩하신 그분"이라고 믿었다.
그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으나 하나둘 무릎을 꿇었다.
까닭 모르게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었다.

처음에는 한두 사람에 불과했다.
그런데 전염이라도 된 듯 모든 사람이 무릎을 꿇었고,
또 흑흑 흐느꼈다.
그들의 정갈한 옷은, 잘 다듬어진 얼굴은 이제 엉망이 되었다.
그들은 그렇게 흐느끼면서 알 수 없는 갈증이 자기의 마음을
세차게 치는 것을 새삼 느꼈다.
잘 갖춘 교양과 화려한 파티에 묻혀 살면서도 그들의 영혼은
가난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분 앞에서 그들은 벌거숭이인 셈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체면이고 교양이고를 차릴 겨룰도 없었다.
그들은 급기야 소리내어 엉엉 울기 시작했다.

그때 마침내 그분이 일어섰다.
모든 사람의 시선이 그분에게 집중되었다.
 그러나 그러고도 한참 동안이나 그분은 아무 말이 없었다.
곧 무어라 말을 시작할 듯한 눈빛으로,
그러나 한참 동안 그분은 그냥 묵묵히 서 있을 뿐이었다.

"자, 모두들.....나를 따르시오....."

한참의 시간이 지난 뒤에 숨막힐 듯한 긴장을 열면서 그분이 말햇다.
그 순간 사람들은 움찔놀랐다.
그들은 이미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분을 따른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와서 나를 따르시오.
부모를 버리고, 처자를 버리고,친구를 버리고 나를 따르시오.....
재산을 버리고,집을 버리고, 지위를 버리고,명예를 버리고,
그리고 나를 따르시오...........
일체를 버리고 나를 따르시오..............."

그것은 무서운 말이엇다.
아니, 끔찍한 말이었다.
사람들은 그분의 말에 몸서리를 첬다.
그들은 밝은 사람들이었다.
그랬기에 그들에게는 정다운 가족이,
자신의 품위를 지켜줄 수 있는 재산이,
그리고도 많은 다른 것들이 잇었고 또 있어야만 했다.
그들은 " 가진 자 " 들이었다.
그리고 그 "소유 " 는 그들의 힘이었고,
그들의 보람이었고, 그들의 모든 것이었다.
그런데 이 신비한 분은 그 모든 것을 버리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점점 무서운 감정에 휘말려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분에게서 내뻗치는 신비한 힘이
그들을 꽁꽁 얼어붙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분은 다시금 말했다.

"당신들은 너무도 오랫동안 나를 잊고 있었소.
당신들은 너무도 오랫동안 내가 바라는 것과는 다른 길을
걸었소.
보시오, 이 아름답게 가꾸어진 분수대를, 길거리를,
집들을, 사람들을......그러나 거기에 사랑은 없소.
거기에 " 사람 " 은 없소.
그것은 차라리 "회칠한 무덤 "  에 불과하고,
거대한 가면무도회에 불과하오.
영혼이 목마른 자들이여, 모두들 나를 따르시오.
모든 것들을 버리고,
모든 것들을 잊고 나를 따르시오.

두 벌 옷을 지니지 말 것이며,
몸을 장식하지도 단장하지도 말것이오.
그리고 그저 아무 말없이 내 뒤를 따르시오.
나는 당신들에게 하늘 나라의 문을 열어주리니,
부자가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란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기보다 어렵소...."
그것은 매우 위험한 주문이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물리치기 어려운 신비한 유혹이기도 했다.
거기에 있던 사람들 중에는 수많은 신사들을 유혹한
경력으로 유명한 미인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이런 유혹은 처음이었다.
그것은 영혼의 유혹이었기에,
어른이건,아이건, 남자건 여자건 가리지를 않앗다.
또한 그것은 매우 신비한 것이어서 그 덫에 걸려든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옴쪽도 못하도록 얽어 매어 버리는 것이었다.

이제 그분은 하늘거리는 백합과도 같은 미묘한 향기에
넘치는 말을 그치고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분의 마른 몸은 슬프고도 쓸쓸한 선을 그리면서
움직였다.
그러자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꿇어 엎드리거나,
그분의 옷깃을 잡고 입을 맞추거나,
흑흑 흐느끼기 시작했다.
저마다 각양각색의 태도로 그분을 찬미했고,
동시에 그분에게 사로잡혔던 것이다.
그분이 나아가는 방향으로는 물살이 갈라지듯
사람들이 물러서서 곧 길이 생겼다.
그분은 그 길로 나아가면서 예의 그 형용하기 어려운
처연한 눈빛으로 사람들에게 축복인지 연민인지 모를
마음을 전했다.
그러나 아무도 그분을 따르지는 않았다.
그분은 이제 인파를 빠져나와 저만치 혼자 걸어거고 있었다.
그러나 그 뒤를 따르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들 못박힌 것처럼 서서 그분의 뒷모습을 바라보고는
있었지만 그 뒤를 따르려고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이튼날부터 그분은 도시의 이곳 저곳에 모습을
나타냈다.
오늘은  아침에 시청 앞 분수대에서 ,
다음날은 마로니에 공원에서 저녁 해질 무렵에,
그리고 그 다음날은 제8다리에서 별빛 고운 한밤중에......
그분은 그때마다 마치 처음인 것처럼 조용히 나타나서
사람들로 하여금 오래오래 잊었던 옛기억을 되새기게 하는
미묘한 말들을 밑도 끝도 없이 던지곤 했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분의 슬픈 태도와 심오한 가르침 때문에
대개 불면(不眠)의 밤을 새우게 마련이었다.

아, 삶이란  과연 무엇인가..........

우리들은 어디에서 왔으며,마침내는 어디로 가는 것인가.......
그곳 사람들에게 있어서 사실 이런 의문들은 이미 오래전에
 잊혀져 버린 의문들이었다.
그들은 화사한 옷차림에,
즐거운 왈츠와 폴카에, 적당히 교양있으면서도 약간은 문란한
사교계에.....물들어 있었다.

그것이 그들의 교양이었고,문화였고,삶이었다.

그런데 그분은 그런 그들에게 자신들의 삶을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는 예의 그 처연하고도 고독한 눈빛을
던지며 도시 이곳 저곳에서 나타나곤 했던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둘씩 추종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대개 젊은이들이었다.
그 젊은이들은 그분과 같이 가죽신에 한벌 옷만을 입고
도시 이곳 저곳에서 그분을 따랐다.
그리고 그런 추종자의 숫자는 조금씩 늘어갔다.

그분은 그런 추종자들과 함께 시간이 나는 대로 사람들을
모아 놓고 이야기를 건넸다.
그것은 매우 무서운 말일 때도 있었지만
어떤 경우엔 부드러운 위로의 말일 때도 있었다.
호수 위에 불어 오는 미풍과도 같이.................
그분의 말은 사람들의 마음에 그리움을,
추억을, 사랑을, 연민을, 슬픔을 불러일으켰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그 분의 말을 들으면서 저도 모르게 주르르
눈물을 흘리는 경우가 많았다.
점점 그부느이 집회에 모여드는 사람의 숫자가 늘어났다.
사람들은 이제 공공연히 그분을 "구세주"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작 그분 자신은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를 밝히지 않았다.
그렇게 되자 시청에서도 그분의 소식을 듣게 되엇다.
그리고 그분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혹시 정치적인 의도가 있지나 않은지,
이 밝은 도시를 깨뜨릴 위험은 없는지,
그래서 시장은 의회 의원들을 모아 놓고 몇 차례 논의를 했다.
의견은 반반이었다.
즉 그분에게 호의를 가진 사람들은
그분이야말로 참된 인간이며,신비한 인간이며,
어쩌면 " 성자 "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에 비해서 그분에게 적대감을 가진 쪽에서의 주장은 달랐다.
그는 정치적인 욕심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며,
어쩌면 사람들을 선동하여 혁명을 일으키려 할지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그분에 대해서 악의를 가진 사람들 중에도
그분의 가르침이 옳지 않아서라기보다 ,
그분의 가르침이 옳은 줄은 알지만 자기 자신으로서는
도저히 따를 수 없다는 점에 화를 내고 있는 사람이 많았다.
사실 그런 것이다.
자기는 할 수 없는 고상하고 참된 일을 해내는 사람을
대하면 존경과 함께 분노가 일기도 하는 법인데 이들이 그랬다.
더구나 그분이 너무나도 허름한 차림새로 감히
이 깨끗한 도시의 전면에 나타나서 교양있는 젊은이들을 타락시켜
누더기를 걸친 것을 부끄러워하지도 않게 된 것이 그들은 분했다.
또 집회만 하더라도 그들의 생각으로 볼 때에는
당연히 깨끗한 강당에서 개최되어야 격식이 갖추어진
교양있는 집회라고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식순에 따라 세련된 사회와,유창한 강의와,정중한 헌화와,
다과회가 따라야만 했다.
그런데 그분은 이런 모든 규칙과 질서를 도무지 무시하고
있다는 점에 일부 시의원들은 격분했던 것이다.

그리고 격분한 의원들 쪽이 그분을 옹호한 쪽보다 
시의회에서 더 실력있는 사람들이었다.
시장 또한 그편이었으므로 마침내 시장은 그분을 도시에서
추방하기로 마음을 먹게 되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그분을 추방할 만한 명분이 부족했다.
그래서 시장은 골똘히 궁리하기 시작했다.
그는 교활한 사람이었다.
그는 매우 교양있고 겸손한 신사였으나,
한편으로 나라 안에서 가장 잘 다듬어진 도시의 시장으로서의
명예를 지켜야만 했던 것이다.
마침내 시장은 은밀히 그분에 대한 소문을 퍼뜨리기 시작했다.
소문은 차츰차츰 퍼져나갔다.
그분의 놀라운"힘"과  신비한 자비심을 접한 사람들에게는 사실 아닌
그 소문이 소용없을 것 같았으나 그게 아니었다.
.
소문의 요지는 그분에게 숨겨진 여자가 있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매우 치명적인 것이 아닐 수 없었다.
그분의 매력은 그 성스러움에 있었기 때문이다.
성스러움과 여자 관계란 도저히 어울릴 수 없는 이미지가 아닌가.
이 도시의 뒷골목에 그 여자가 살고 있다고 사람들은 쑤군거렸다.
저렇게 거룩하게, 저렇게 일체를 다 버린 것 같은
저분의 뒷면에는 술집에서 몸을 파는 더러운 여자가 있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다가 드디어 그것을 믿게 되어 갔다.

그렇게 소문이 받아들여지게 된 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밝은 사람들"인 그들은 사람의 겉과 속이 본래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 그들 자신이 그랬다.
그랬기 때문에 그들은 그분조차도 자신들과 같을 수 있다고
쉽게 믿게 되었다.

둘째는 그분  말이 옳을수록, 그리고 그 옳은 말을 자신들이 따르기 어려울수록
그분이 미워졌고, 자신들의 이기심을 채찍질하는 그분이 사라졌으면
싶은 마음이 일어났기 때문에,
한편으로 존경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소문에 동조했던 것이다.
소문이 무성해지면서 차츰 그분을 따르던 사람의 숫자는
적어지기 시작했다.
제자들도 하나 둘 그 곁에서 떠나갔다.
그리고......어느 날부턴가 그분이 이곳에서 보이지 않게 되었다.
사람들은 그래도 마음을 놓지 못했다.
자신들의 욕심 많음을 ,겉 꾸밈을, 이중성을 슬프고도 고독한 눈빛으로,
가슴이 저리도록 자비 어린 마음으로, 일면 꾸짖고 일면 어루만져 주던
그분이 정녕 떠나가리라고는 믿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그분이 다시금 자신들 앞에 나타날지도
모른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마음을 놓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어딘가 모르게 마음 한구석이 켕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분이 그들 곁을 영영 떠나가 버린 것은
분명해지게 되었다.
그분은 여러 달이 지나도록 도시 어느 곳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사람들은 두 가지의 유형으로 반응을 나타냈다.

한 유형은 그분의 출현을 하나의 해프닝으로 쉽게 치부해버렸다.
"한 때 그런 일이 있었지"
이것이 그들의 입장이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의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그들은 더욱더 그리워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그분의 눈빛을,손짓을,말씀을,태도를,
그리고 그분이 그들의 마음에 남겨 놓고 간 뭔지 모를 서러움을
절실히 느꼈다.
이제 그분은 그들에게 있어서
위안자요 동시에 고문자였다.
그들은 그분을 생각하였고, 그분을 앓았다.
그들에게 그분의 뜻은 점점 깊어져 갔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은 서로 모여서 그분을 추모하기 시작했다.
그분의 행적과 말씀을 기록하고,그에 대해 토론을 하고,
또 그 의미를 묵상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마음에 위안을 느꼈다.

그런 때에 이상한 소문이 떠돌았다.
그분이 이 도시의 뒷골목에 나타났다는 것이었다.
뒷골목!
그것은 이 도시의 앞쪽에 사는 소위 "밝은 사람들 " 에게는
입에 담기에 더러운 곳이었다.
그런데 그분이 그곳에 나타나시다니!
특히나 그분을 구세주라고 믿게 된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그 소문의 충격은 실로 대단했다.

창녀와 작부와 추태와 범죄와 더러움이 끈적 끈적 묻어나는
뒷골목에 그분이..............
그들에게 있어서 그분의 이미지는 고상하게 미화되어 있었다.
이제 그분은 허름한 옷에 해진 신발을  신었던 분이 아니었다.

그분은 온갖 기적을 행하고 온갖 신비스러운 광휘 속에서 천사의
호위를 받고 마침내 하늘에 오른 신이자
신의 독생자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분은 이제 사람조차도 아니었다.
그분은 성결(聖潔)의 상징이었고,
구원의 희망이었고 , 찬송의 대상이었고, 시와 음악의 주제였다.
그런 그분이 뒷골목에 나타나시다니 !

사람들은 그 소문을 믿지 않으려고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만 소문은 갈수록 무성해져만 갔다.
그러나 그 누구도 소문의 진실 여부를 가리지 못했다.
그만큼 도시 앞 사람들과 뒷골목 사람들의 왕래는
금기시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누구도 뒷골목에 가서 그 소문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려는 용기를 내지 못했다.
그들에게 있어서 뒷골목은 곧 죽음의 곳이자,
더러움의 곳이자, 악마의 곳이었고,
가까이 해서는 안될 타락의 곳이었기 때문이다.
소문은 점점 심해졌다.

소문에 의하면 그분은 뒷골목에서  온갖 이적(異蹟)을 행하신다고 하였다.
앉은뱅이가 일어나고,문둥이가 깨끗해지고,벙어리가 말을 하고,
맹인이 눈을 뜨고.........................
그리하여 눈물과 환희와 구원이 폭포처럼 쏟아진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되엇다.
그래서 몇 사람의 대표가 뽑혔다.
뒷골목에 가서 사실의 진위를 가려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표들은 뒷골목으로 파견되었다.
대표들은 조심조심 도시의 뒷쪽으로 숨 들었다.
그들은 뒷골목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적당히 변장을 했다.
그리고 태도에 있어서도 세심하게 신경을 썼다.

과연 뒷골목이었다.
시에서도 수십 년간이나 돌보지 않았기 때문에 오물의 악취가
코를 찔렀다.
수많은 거지떼들, 헐벗은 아이들, 남녀의 히히닥거림.....................
술과마약과 붉은 조명등과 패싸움과...............
교양으로 다듬어진 그들의 머리는 엉망진창이 되었고
구역질을 참느라고 고통이 심했다.
대표들은 사람에게 물어서 간신히 그분이 있는 곳을 알아냈다.
소문은 사실인 모양이었다.
그러나 미심쩍은 면도 없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동안 들은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그분은 다른 사람인 것 같기도 했다.

"그분이 슬픈 눈빛에 자비심이 넘치는 것은 사실이라우......"

한 노파가 그들에 해준 말이엇다.
그러나 덧붙였다.

"하지만 그분은 온종일 술에 취해 있을 뿐만 아니라
온몸에 갖가지 장신구를 달고 다닌다우."

이거야말로 사실이라면 놀라운 일이라 할 수 있었다.
술에 취해 있다 ?
온갖 장신구를 달고 다닌다?
그것은 너무나도 그분답지 않은 모양새가 아닌가?

그러나 확인해 보면 알 일이었다.
드디어 그들은 그분이 계신다는 곳까지 왔다.
그곳은 뒷골목 중에서도 가장 더럽고 추악한 곳인 것 같았다.
마침 저녁 때였다.
막 도착한 배에서 선원들이 상소리를 늘어 놓으며
몰려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술집 여자들이 기성을 지르며
유혹하고 있었다.
이런 곳에 그분이?
그러나 그들은 그곳에서 미묘한 "힘"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다!
그것은 바로 그분만이 발산했던 그 힘이었다.
사람을 꼼짝 못하게 붙드는 영적인 그 힘 !
그들은 이제 더 물을 것도 없었다.
그 힘이 나오는 곳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되었다.
이제 이 뒷골목의 소문의 주인공이,
그들이 수년 전에 보았고 또 추방했던 그분인 것도 너무도
분명했다.

아, 그러나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인가.
그분은 있긴 있었으나 예전의 그분이 아니었다.
노파의 말은 사실이었다.
벌겋게 취한 그분의 얼굴은 주독이 올라 거뭇거뭇 추악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아름답던 눈, 바다 같고 호수 같던 그 눈은
탁할대로 탁해져 있었다.
머리는 마구 헝클어져 있었고,빠진 이빨 사이로 술냄새가 홧확 끼쳤다.
그리고 그 상스러운 말투라니 !
그것도 도저히 그들이 구세주로까지 받들던 예전의
그분일 수가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관인 것이 그분이 걸치고 있는 갖가지
장신구들 이었다.
귀걸이,목걸이,팔찌,시계,반지,안경.............................
그것도 몇 개씩이나.........수십 개도 넘는 장신구들 속에  그분은
온통 파묻혀 있었다.
게다가 그분이 앉은 그 술집 방안 벽에도 장신구들은
주렁주렁 걸려 있었다.
아, 이런 꼴을 보다니 !
그들은 기가 막혀서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러나 그분이 아직도 그분이라는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이 있었다.
거기에 모인 사람들의 태도였다.
늙은이,젊은이,소년,작부............
그중에 삶에 찌들지 않거나, 마음 속에 고통,한,서러움이 없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그런 이들이 수시로 그분에게 들락거리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그분 곁에 앉아서 그분의 일거수 일투족을,
그분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숨을 죽인 채 경청하고 있었다.
그들은 도대체 왜 그 분을 그토록 따르는 것일까.
저 지저분하고 추악한 모습에서
그들은 과연 무엇을 보는 것일까.

자기 자신의 모습을?
그렇지 않다면 무엇을?

"아, 스승이시여 !"
참지 못한 대표 하나가 부르짖었다.

"도대체 이 무슨 꼴이란 말입니까?
이 더러운 곳에서 이 더러운 자들과 이 무슨 꼴이란 말입니까?"

그러자 그분과 일동의 얼굴이 일시에 그 대표에게로 향했다.
한 동안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그분은 저간의 사정을 짐작하신 듯했다."

"그대들은 나를 버렸거니와 이들이 나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니라."
이윽고 그분이 나직하게 말했다.

"내 말을 잘 듣거라.
이들은 죄많은 자들이니라.
이들은 더럽고,추악하고,병든 영혼을 지닌 자들이니라.
그러나 이들은 스스로 그것을 알고 있느니라.
자신이 병들었음을,
자신이 추악함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느니라.
그렇기에 이들은 겸손한 자들이며,
그렇기에 이들은 구원받을 수 있느니라."

그분의 슬픈 목소리는 계속되었다.

"또한 이들은 사랑할 줄 아느니라.
이들은 더 많이 사랑했기에 또한 구원받을 수 있느니라.
보라 , 나는 이토록 고귀한 장신구들에게  둘러싸여 있도다.
이것은 모두 이들로부터 받은 것이로다."

"고귀한  장신구들이라구요?
스승이시여, 모든 것을 다 버리라던 당신이 아닙니까?
하물며 이것들은 더럽고 조잡한 것들이 아니옵니까? "

그러자 스승은 잠시 대답하지 않고 도저히 잊을 수 없는
처연한 눈빛으로 그들을 측은하게 바라다 보았다.

"잘 들어라.
예전에 한 여인이 있었느니라.
그녀는 포구에서 술을 팔고 몸을 파는 여자였느니라.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녀는 사랑할 줄을 알았나니,
한번 그녀를 품에 안고 , 한번 그녀의 품에 안긴 남자는
누구도 그녀를 잊지 못했느니라.
그들의 더러움에, 그들의 욕정에,그들의 공포에,
그들의 한에, 그들의 눈물에, 그들의 어리석음에,
그들의 서러움에 같이 울어줄 줄 알았느니라.

그리하여 많은 뱃사람들이 그녀에게 왔느니라.
그리고 그녀에게 괴로움을 하소연하고,
사연을 털어 놓고, 사정을 푸념하고,아픔을 고했느니라.
그러면 그녀는 그때마다
한숨짓고,눈물짓고,가슴을 치고,울었느니라.
그대들이여,
그리하여 뱃사람들은 그녀에게서 위안을 받고
겨우 미소를 띠며 널판지 한장 밑이 죽음인
저 험한 파도를 향해 수만 리 뱃길을 떠났거니,
그들에게 있어서 여인은
곧 아내이자,누이이자,어머니이자,애인이었느니라.
그리하여 여인은 수천명의 남편을,오빠를,자식을,
애인을 가졌느니라.
그리고 그렇게 뱃길을 떠난 그들은
한해나 두해 뒤에 다시 그 포구에 이르렀을 때
제일 먼저 그녀를 찾게 마련이었는데,
그때마다 그녀에게 선물을 했던 것이니라.
그들이 할 수 있는 선물은
값비싼 도자기도 아니요,
귀한 향료도 아니요,
페르시아 산 카펫도 아니었으니,
그대들이여 여기를 보라, 바로 이것들이 그것이니라.
그럴 때 그녀는 그 장신구들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가능한 한까지 몸에 걸쳤느니라.
왜였겠느냐.
행여 그 선물을 준 사나이가 다시 그녀를 찾았을 때
행여 선물을 버리거나 잊음으로써 그 사나이를
가슴 아프게 할 수는 정녕 없었기 때문이니라.

알겠는가, 그대들 !
자,이제 돌아가거라.
저 하늘 나라에서 그녀보다 더 높은 데 거할 피조물은
찾을 수 없을지니,
그녀가 그곳으로 간 뒤 나는 그 뒷일을 감당하고 있을 뿐이니라......."

그러고 나서 그분은 아무 말이 없었다.
사람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누구에게서부턴가 참고 참았던 흐느낌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흐느낌은 감염되듯 그곳의 모든 사람들에게 퍼져갔다.

붉고 푸른 등이 흔들리는 악취나는 뒷골목,
그러나 그곳에 밤하늘의 별빛은 세상이 있은 뒤로
다시는 없었을 만큼 드높고 맑고 차가운 빛으로 가만가만
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