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날 때부터 음악과 미술과,시,수학,물리학 등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이 있다.
그 이유는 아무도 모르지만, 이따금 그런 사람들이
태어난다.
"데라둔" 근처의 작은 마을에서 친뚜는 천성적인
시인(詩人)으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데브람은 매우 가난한 사람이었다.
친뚜가 태어나기 직전,
아내가 너무 심한 해산의 진통을 겪었으므로
데브람은 이웃 사람을 부르러 갔다.
그가 떠난 사이에 친뚜가 태어났으며,
산모는 혼자서 아이를 낳다가 그만 죽고 말았다.
이웃 사람들을 데리고 데브람이 돌아와 보니,
아내 곁에는 예쁜 아이가 울고 있었다.
데브람이 아내에게 물었다.

"여보, 괜찮아?"

아내는 대답이 없었다.
이웃 여자가 그녀에게 몸을 구부리더니 이렇게 말했다.

"얼굴이 창백한데.....꼭 죽은 것 같아요."

마을의 노인이 달려와 아내의 맥박을 짚어 본 뒤에 말했다.

"그렇소,죽은 게 틀림 없소."

아내가 죽었다는 소리를 듣자 데브람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는 머리를 파묻고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잠시 후에 그는 큰 소리로 울면서 외쳤다.

"내 아내가 죽다니 !
이제 이 아이는 누가 키우란 말인가 !
누가 나한테 밥을 해줄 것인가 !
나같이 가난한 사람이, 이제 돈도 없으니 새 아내를
맞아들일 수도 없구.
아 , 나는 이제 망했다 !"

이웃 사람들은 , 아이는 자기들이 키워 줄 것이고,
언젠가 돈을 벌어 새 장가를 가면 되지 않느냐고 그를 진정시켰다.


누군가 죽었다고 해서 다 같이 죽지는 않는다.
세상은 변함 없이  돌아간다.
데브람은 죽은 동물의 가죽을 벗기는 자신의 직업을 계속했다.
가죽과 뿔과 뼈를 중간 상인에게 파는 일이었지만
수입은 극히 적었다.
여러 날 동안 죽은 동물을 한 마리도 구하지 못하는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굶거나 이웃에서 양식을 꾸어다 먹어야 했다.

자식도 친척도 없는 어떤 노파가 친뚜를 데려다 키웠다.
그 노파에게는 땅이 조금 있어서 일 년 내내 양식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래서 데브람은 이제 자식 걱정은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새로운 걱정거리가 그의 머리 속을 떠나지 않고 있었으니,
바로 새 아내를 얻을 걱정이었다.
죽은 동물의 가죽을 팔아서 번 돈으로 새 장가를 들기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마을엔 소와 염소와 말이 많이 있었지만 대체로 건강한 편이었다.
어쩌다 한두 마리 죽으면 데브람은
가죽과 뿔을 얻을 수 있었다.
어떤 때는 멀리 떨어진 이웃 마을에서 죽은 동물을 구하기도 했다.
데브람은 혼자서 생각했다.

"만일 신께서 전염병을 내려보내 주시면 짐승들이 매일 죽을 텐데.
그러면 나는 부자가 될거야."

문득 눈동자가 빛나면서 어떤 묘안이 떠오른 듯 그는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괭이와 빈 자루를 들고 정글 지대로 갔다.
산으로 올라간 그는 이상하게 생긴 뿌리를 캐어
자루에 담았다.
그것은 양파처럼 생겼지만 크기가 아주 작았다.
그는 그것을 한 자루 캐어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튼날 마을 주민 하나가 와서 데브람에게 자기의 소가
죽었으니 치워 달라고 말했다.
마을에서 죽은 짐승을 치워 주고 그 대가로 가죽과 뿔을 얻는 것이
데브람의 직업이었던 것이다.
데브람이 말했다.

"어찌된 일로 소가 죽었읍니까?
어제 당신네 소를 보았는데 무척 건강하던데,어쩐 일이죠?
짐승들 사이에 전염병이 돌고 있는 것이나 아닐까요?"

다음 날 또다른 집의 소가 죽었고, 그 다음에는 더 많이 죽었다.
데브람의 마당은 가죽과 뿔로 가득찼다.
그는 매일 짐승 시체의 가죽을 벗기느라 정신이 없었다.
마을의 이장이 수의사를 찾아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전염병에 대해
말했다.
의사는 자기가 동물들을 검사해 보겠노라고 대답했다.
다음 날 의사가 마을에 왔을 때, 마침 마을 이장의 훌륭한 말이
죽어가고 있었다.
의사는 죽어 가는 말을 검사한 다음, 말이 먹던 풀까지 조사했다.
그는 모든 짐승이 이런 식으로 죽었느냐고 물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사전에 아무런 증상도 없이 갑자기 쓰러져 죽었다는 것이
그들의 증언이었다.
의사는 풀더미 속에서 뿌리 하나를 집어들고 말했다.

"이것은 동물들에게는 독이 되는 뿌리인데,
어떻게 이것이 여기에 와 있지요?"

마을 이장이 말했다.
"어젯밤에 내 손으로 직접 풀을 주었는데, 그때는 그것이 거기에
없었습니다.
이제 기억이 나는군요.
아침 일찍 데브람이 와서 우리집 말이 병들지 않았느냐고 물었습니다.
나는 그에게 말이 괜찮은지 살펴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외양간에 간 사람이 없습니다."

말이 죽자 데브람은 시체를 치워 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데브람이 와서 말했다.

"나으리, 아침에 제가 이 말을 보았을 때,
그때부터 이미 말의 표정이 슬프고 졸려 보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뭔가 위험한 병에 걸린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었습니다.
의사가 뭐라고 하던가요?"

마을 이장이 말했다.
"병에 걸린 것인지, 중독된 것인지 의사도 아직 잘 모른다네."

데브람은 말의 시체를 끌고 돌아갔다.
집으로 가다가 의사는 죽은 짐승의 가죽이 보관되어 있는
데브람의 집을 조사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의사는 데브람의 오두막집 안으로
들어가, 독뿌리가 들어 있는 자루를 찾아냈다.
그는 집으로 돌아와 그 사실을 경찰에 알렸다.
말의 가죽을 벗긴 뒤 데브람은 집으로 돌아왔다.
가죽과 뿔을 사 가는 중간 상인이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데브람이 말했다.

"이것들 전부를 살 만큼 충분한 돈을 가져 왔습니까?"
중간 상인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날 믿지 못하겠나? 모자라는 돈은 다음에 갚겠네."

가죽과 뼈 전부를 흥정하니 110루삐가 되었다.
중간 상인이 말했다.
"걱정말게,데브람. 이 자리에서 110루삐를 다 지불하겠네.
보아 하니 자네는 날 믿지 못하는 것 같구먼."

데브람이 웃으면서 말했다.

"믿지 못하는 게 아니라, 곧 결혼할 예정이라서 한꺼번에
돈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순간 경찰이 들이닥치며 말했다.

"데브람, 너와 결혼할 여자는 준비가 다 되었다. 가자."

그들은 수갑을 채워 독뿌리가 든 자루와 함께 그를 체포해 갔다.
그렇게 해서 데브람은 감옥의 철창과 결혼하게 되었다.

노파의 집에서 친뚜는 무럭무럭 자랐다.
그는 영리하고,명랑했으며, 건강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운이 없었다.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은 없다.
친뚜는 다른 것을 모두 가졌지만, 좋은 행운을 갖지 못했다.
그가 세 살 때 그를 키워 주던 친절한 노파가 세상을 떠났다.
친뚜는 말도 배우고 걸음도 걸었지만 마을에서는
아무도 친뚜를 데려다 키우려고 하지 않았다.
친뚜를 불길한 존재로 여겼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저 애가 태어나자마자 어머니가 죽었고,
석 달 있다가는 아버지가 감옥에 갇혔다.
그리고 3년 후에는 그를 키우던 노파까지 죽었다."

마을의 이장이 친뚜를 데라둔 시내에 있는 고아원으로
데려다 주었다.
그는 그곳에서 다른 아이들과 함께 자랐다.
고아원에 있는 대부분의 아이들은 게으르고 둔했으며 지저분했다.
그러나 친뚜는 정반대였다.
그는 매우 미남이었으며,영리했고,활기찾다.
고아원을 운영하는 여인은 친뚜에게 깊은 애정을 느꼈다.
그래서 그를 고아원에서 키우지 않고
그곳에서 조금 떨어진 자기 집으로 데려가서 같이 살았다.
그녀는 불과 다섯 살밖에 안 된 친뚜에게
읽고 쓰는 법을 가르쳤으며,여섯 살이 되면서부터 그는 시(詩)를
짖기 시작했다.
여인은 그의 놀라운 재능에 감동했다.

그런데 일곱 살이 되었을 때 친뚜는 갑자기 병에 걸려 두 눈이
멀어 버렸다.
두 눈동자가 뿌연 막으로 뒤덥이면서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친뚜는 별로 걱정을 하지 않았지만,
의사가 그런 종류의 눈병은 고칠 수 없다고 했기 때문에
여인은 슬픔에 잠겼다.

친뚜가 시를 읊으면 여인이 그것을 종이에 받아 적었다.
그녀는 그 시들을 모아 책으로 출판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나이를 먹으면 그가 더 좋은 시를 지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녀는 좀더 기다리기로 했다.

몇 년 뒤 친뚜가 열 세 살이 되었을때,
여인은 돈이 필요해졌다.
그녀는 모아 놓은 시를 출판업자에게 팔아 그를 보살피는 데
필요한 충분한 돈을 마련했다.

그 여인에게는 브하바니라고 하는 여조카가 하나 있었는데,
나이가 친뚜와 같았다.
브하바니와 친뚜는 곧잘 함께 어울려 놀았다.
친뚜는 장님이었지만 꽤나 놀이를 즐겼다.
그들은 이따금 장님 놀이도하고, 때로는 멀리까지 산책을
나가기도 했다.
브하바니의 이모는 그들이 함께 노는 것을 볼 때마다 무척 행복했으며,
친뚜가 시를 지어 노래를 부르면
그것을 노트에 받아 적으라고 조카에게 일렀다.
브하바니는 이모에게서 친뚜의 아버지가 감옥에 갇혀 있다는
애기를 들었다.
그러나 친뚜에게는 부모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친뚜가 그녀의 친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한번은 브하바니가 이모를 따라 공원엘 간 적이 있었는데,
마침 감옥의 죄수들이 채소밭에서 일하고 있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데브람도 그곳에서 일하고 있었다.

브하바니의 이모가 말했다.
"저 사람이 바로 친뚜의 아버지다.
친뚜의 어머니가 죽은 뒤에 그는 새 장가를 들려고 했단다.
그런데 돈이 없어서 마을의 소들을 독살해서 그 가죽과 뿔을 팔아
돈을 벌려고 했지.
그러다가 경찰에 발각되어 지금은 감옥에 있는 것이란다."

브하바니가 말했다.
"그렇게 나쁜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는군요.
저렇게 농담하고 웃는 모습을 좀 봐요."

친뚜와 브하바니가 매우 가까워졌기 때문에 그녀의 이모는 그들이
아직 열 아홉 살 밖에 안 되었지만 두 사람을
결혼시키기로 마음먹었다.

브하바니의 이모가 친뚜를 돌보기 시작한 지도 어느새 17년이 되었으며,
그녀는 많이 늙었다.
친뚜의 시를 팔아 그녀는 많은 돈을 벌어 새 집도 사고
고아원도 확장했다.
그러나 어느 날 그녀는 나이를 먹어 죽고 말았다.

친뚜가 그녀와 17년 동안 맺었던 관계도 끝이 났다.
그는 너무나 슬픈 나머지 건물과 사람들과 도시 전체가
자기를 집어삼키려 든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브하바니,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고,
당신 말고는 아무도 나를 만날 사람이 없는 조용한 곳으로
나를 데려다 줘.
사슴과 새와 나무와 함께 살고 싶어.
여기서는 숨이 막힐 것 같아."

브하바니는 그의 고통을 이해했다.
그를 다른 곳으로 데려가지 않으면 미쳐 버릴지도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집과 다른 재산을 죄다 팔아 버리고
산속의 작은 마을 뭇쑤리로 이사를 갔다.
친뚜의 아버지는 너무 많은 가축을 독살했기 때문에 죄가 컸다.
그래서 감옥에서 10년을 살아야 했다.
석방되자 그는 더 이상 결혼이나 돈 버는 일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수도승이 될 생각으로 그는 절을 찾아갔다.
수도승이 되는 길만이 자신의 죄를 씻는 방법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하리드와르"로 가서 수도승이 되어
절에서 살았다.
그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에 대해서는 거의 잊고 있었다.
친뚜는 이제 산속 마을에서 살게 되어 무척 행복했다.
시가 그의 입에서 물 흐르듯 흘러나왔다.
새의 노랫소리와 나무 이파리들의 속삭임 소리가
그의 가슴을 열어, 그는 축복에 젖어 춤추고 노래했다.

작은 마을에서는 사람들끼리 잘 알기 마련이다.
친뚜와 브하바니가 처음 뭇쏘리에 왔을 때는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지만 차츰 사람들과 친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친뚜가 훌륭한 시인(詩人)인 것을 알고는
그를 방문하기 시작했다.

그 마을에 라비 상카라는 이름의 젊은 소설가 한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평소에 친뚜의 시를 무척 좋아해서 그의 시집을 여러 권
읽은 터였다.
친뚜가 그 마을로 이사를 왔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당장에
친뚜를 방문했다.
친뚜와 라비 상카는 좋은 친구가 되었다.
둘 다 글 쓰는 스타일이 비슷했던 것이다.
라비 상카는 날마다 친뚜의 집을 방문해서 여러 시간씩 머물렀다.
친뚜는 자기의 시를 사랑하는 친구를 만나게 되어 무척 행복했다.
라비 상카는 그의 시를 사랑했을 뿐 아니라
브하바니까지 사랑했다.
그녀가 무척 아름답다는 것을 두 눈으로 볼 수 있었기 때문에 라비 상카는
그녀에게 반했다.

여성은 언제나 남자가 자신의 아름다움을 알아 주기를 원한다.
친뚜는 장님이었기 때문에 단지 추상적으로만
그녀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브하바니는 친뚜의 사랑 속에는
뭔가 빠잔 것 같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녀는 혼자서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는 날를 볼 수 없다.
그러니 어떻게 나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겠는가?
그는 시인이며, 그의 마음 속에서 나는 한 편의 시일 뿐이다.
그는 내가 아름다운가에 대해 그저 시나 지을 뿐이다.
그는 실제로 나의 아름다움을  느끼지도 못한다."

그녀는 차츰 미남인 젊은 청년 라비 상카에 이끌리기 시작했다.
라비 상카는 친뚜의 눈이 보이지 않는 것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그와 브와바니는 함께 앉아 젊음을 즐겼다.

어느 날 브와바니는 라비 상카와 잠시 산책을 나갔다.
라비 상카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며,
브와바니에게 함께 살자고 제의했다.
그 무렵 브와바니도 라비 상카와 깊은 사랑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앞 못 보는 친뚜를 암흑 속에 버려둔 채
달아나기가 두려웠다.
그녀가 말했다.

"두려워요, 라비 상카.
그가 살아 있는 한 그를 버릴 수는 없어요."

이야기에 몰두하느라고 라비 상카는 길에 있는 검은 코브라 뱀을
밝고 말았다.
순간 그는 비명을 지르며 펄쩍 뛰었다.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죽은 뱀이었다.
그는 브하바니의 귀에 대고 뭔가를 속삭인 다음,
막대기로 뱀을 감아 들고서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온 브하바니는 아주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요보,늦어서 미안해요.
생선을 몇 마리 사왔어요.
며칠 동안 당신은 생선을 먹지 못했잖아요.
제가 요리해 드릴께요."

그녀는 뱀을 토막내어 냄비 안에 넣은 다음 친뚜의
방으로 가서 말했다.

"여보, 한 시간만 여동생 집에 가서 있다가 올께요.
라비 상카가 바래다 주기로 했어요.
생선을 화덕 위에 얹어 놓았으니 15분 뒤에 물을 한 컵 넣으세요.
그런 다음 10분쯤 있다가 드시면 돼요.
저를 기다리지 마세요.
여동생 집에서 놀다가 올 테니."

친뚜가 말했다.
"그렇게 할 테니까 걱정마.
여동생 집에서 맘껏 놀다 오라구."

브하바니는 친뚜가 눈치채지 못하게 그동안 적어 놓은 시
원고를 챙겼다.
모든 시 원고를 가지고 그와 라비 상카는 그곳을 떠났다.

15분 뒤에 친뚜가 남비 뚜껑을 여는 순간 뜨거운 김이
그의 눈으로 확 솟구쳐 올라왔다.
그는 얼른 물 한 컵을 쏟아 부은 다음 뚜껑을 덮었다.
두 눈이 뜨거워 얼른 눈을 비비며 찬물로 씻었지만
효과가 없었다.
눈에 불이 붙은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배가 무척 고팠고,
또 생선을 먹어본 지가 하도 오래 되었기 때문에 어서 먹고 싶었다.
아직도 눈이 불타는 듯했지만  그는 다시 부엌으로 가
생선이 익었나 알아보려고 냄비 뚜껑을 열었다.
다시 뜨거운 김이 눈으로 확 솟구쳐 오르자 그는 그만
정신을 잃었다.

정신을 차려서 보니 생선이 타서 방안이 연기로 꽉 차 있었다.
그는 화덕의 불을 끈 다음 냄비에 물을 부었다.
또 다시 방안은 연기로 가득찼다.
친뚜는 눈에 불이 붙은 것 같은 통증을 참을 길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밤새 그는 혼수상태에서 헤메며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시간이 얼마나 되었는지 조차 알지 못했다.
아침에야 그는 정신을 차리고 눈을 비볐다.
손등으로 눈을 비비다가 그는 문득 손이 보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방안을 둘러보니 너무나 놀랍게도 전부 다 보이는 것이었다.
그는 어찌나 기쁜지 소리를 지르며  방밖으로 달려나갔다.

"브하바니,내 눈이 보여! 브하바니,세상이 보인다니까!"

그러나 아무 대답이 없었다.

"아, 그렇지. 라비 상카와 함께 여동생 집엘 간다고 했지.
곧 돌아올 거야.
내 눈이 보인다는 사실을 알면 대단히 기뻐할 거야.
그녀가 오기 전에 냄비를 씻고 부엌을 청소해 놓아야지."

그는 부엌으로 갔다.
남비 속에는 타다가 만 웬 고기 토막이 남아 있었다.

"이게 뭐지? 이게 생선이야? 아니야. 생선이 아닌 것 같아."

그는 브하바니에게 확인을 시키려고 남비를 한쪽으로 치워
놓은 다음 부엌을 청소했다.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지났다.
그리고 다시 밤이 되었다.
그래도 브하바니는 돌아오지 않았다.
친뚜는 밤새 그녀를 기다리다가 아침 나절에야 잠이 들었다.
눈을 뜨자 점심 때였다.
그는 집 밖으로 나가 소리를 치며 길 쪽으로 달려 갔다.

"브하바니! 브하바니 !"
수도승 하나가 길을 걸어거고 있다가 친뚜가 미친 사람처럼
소리치며 달려 오는 것을 보았다.
수도승이 그에게로 다가가 물었다.

"무슨 일이오?"
친뚜가 말했다.
"내 아내가 나를 버리고 떠났습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습니다.
어디로 갔을까요?"

수도승이 웃으면서 말했다.

"내가 젊었을 때 내 아내도 나를 버리고 떠났다네.
고의는 아니었지만 말이야.
아이를 낳다가 죽었거든."

그리고 나서 수도승은 다음과 같은 뜻의 산스크리트 시를 읊었다.

"연필과 책과 아내__________ 이것들은 남의 손에 들어가면
절대 돌아오지 않는다.
"젊은이, 아무 걱정 말게. 돈을 벌어 새 여자와 결혼하게나.
자네는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는가?"

친뚜가 말했다.

"저는 시인입니다.
이미 시집도 여러 권 출판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브하바니를 원합니다.
다른 여자는 필요없습니다.
그녀의 얼굴을 보고 싶습니다.
오랫동안 저는 장님인 채로 그녀와 함께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눈이 보이기 시작했는데 그녀는 저를 떠난 것입니다."

그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수도승이 말했다.
"자네의 집으로 가보세.
어쩌면 그녀의 행방을 알 만한 증거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들은 집으로 갔다. 친뚜가 말했다.
"그녀가 나에게 생선을 요리해서 먹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저를 기다리지 말고 혼자 드세요.
여동생 집엘 다녀올테니까요" 라고 말했습니다.

수도승은 남비 속을 살펴보고 말했다.

"지금 이걸 생선이라고 했는가?
젊은이, 자넨 미쳤군. 이건 독이 있는 뱀이야. 이걸 먹었나?"

친뚜가 말했다.
"아니오. 먹지는 않았지만, 그것을 요리하려고 할 때
뜨거운 김이 두 눈으로 확 솟구쳐 올라왔습니다.
저는 눈이 너무 뜨거워 기절하고 말았습니다.
제 생각엔, 독기가 어린 뜨거운 김이 멀었던 눈을
치료한 것 같습니다."

친뚜는 그동안 써둔 시 원고를 찾아보았지만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는 말했다.
"아, 모든 것이 가버렸구나 !"

그러다가 그는 웃기 시작했다.

"신은 자비롭기도 하시지.
내 두 눈이 멀었을 때는 아내를 주시더니,
아내가 떠나고 나니 두 눈을 주셨구나."

수도승도 웃으면서 말했다.

"정말로 신은 자비로우시다네.
내 아내가 죽자 나를 감옥에 가두더니,
감옥에서 풀려나자 거지로 먹고 살게 해주셨다네."

그들은 마주보고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친뚜가 말했다.
"스님, 저와함께 사시는 것이 어떠하십니까?
저는 쉽게 돈을 벌 수 있으니, 스님께서는 음식을 구걸하러 다니지
 않아도 됩니다.
부디 저와 함께 사십시오."

수도승이 말했다.
"좋아. 지혜로운 자와 뱀은 어디에도 자신의 둥지를 틀지 않는다네.
남의 둥지를 대신 쓸 뿐이지.
편할 때까지만 자네와 함께 살겠네."



브하바니와 라비 상카는 서둘러 그 도시를 떠나 "알라하바드" 로 가서
살기 시작했다.
알라하바드는 지식인과 화가와 음악가, 시인들이 많이 모이는 도시였다.
라비 상카는 자신의 이름으로 친뚜의 시를 출판해서
많은 돈을 벌었다.
얼마 동안은 행복하게 살았지만 ,
라비 상카는 노름꾼이 되었다.
그는 날마다 노름을 했다.
처음에 브하바니는 그가 노름을 하는 사실을 모르고 지냈다.
그가 외출할 때마다 그녀는 문인 클럽에 가거나
일자리를 구하러 나가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그는 차츰 술까지 마시고 귀가해서 싸움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는 브하바니가  술을 마시지 말라거나 너무 늦게
귀가했다고 말하면 당장에 싸움을 걸었다.

라비 상카는 친뚜의 시를 팔아 번 돈을 몽땅 잃었다.
그의 소설은 출판할 가치가 없는 것들이었고,
그에게는 다른 일을 할 만한 기술도 없었다.
그는 혼자서도 먹고 살 능력이 없는 인간이었는데,
브하바니까지 있으니 두 사람을 먹여 살릴 돈을 벌어야만 했다.
그는 거리에서 잠을 자거나 갠지스 강의 강둑에서
살기 시작했다.
어쩌다 그는 집으로 돌아와 브하바니의 옷과 장신구를 훔쳐
시장에 내다 팔곤 했다.
브하바니는 아직도 몇 편의 시를 간직하고 있었다.
그것들은 친뚜가 그녀의 아름다움과 그녀에 대한 감정을
읊은 시들이었다.
그것들은 매우 독특한 시로, 시 전편에 평범한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추상적인 이미지들이 가득차 있었다.
그녀는 그 시들을 출판할 생각이 없었다.
그것들은 그녀가 가장 아끼는 소중한 재산이었던 것이다.
그 시들은 그녀의 사랑이었고,
그녀의 인생이었다.
라비 상카가 그녀의 옷과 장신구들을 훔쳐 가자
그녀는 그 시 원고들도 훔쳐갈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그에게서 도망치기로 결심했다.

바로 그날 밤 잔뜩 술에 취해 집으로 돌아온 라비 상카는
그녀에게 돈을 달라고 요구했다.
브하바니가 돈이 없다고 말하자
그는 정신이 돌아 그녀를 마구 때리기 시작했다.
어찌나 무자비하게 때렸던지 그녀는 기절을 하고 말았다.

그녀가 기절하자, 라비 상카는 그녀가 입고 있는 옷까지
모두 벗겨 가지고 떠났다.
의식을 차린 브하바니는 자기가 발가벗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집안에는 요리할 때 입던 낡은 사리(인도 여성이 몸에 두르는,천처럼 생긴 옷) 뿐이었다.
그녀는 그 낡은 사리로 얼른 몸을 가렸다.
그녀는 그가 다시 돌아오면 자기를 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마루바닥에 감추어 놓았던 시 원고를 찾아들고
데라둔으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데라둔에는 그녀의 부모가 살고 있었다.


브하바니는 친뚜가 이제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녀는 친뚜가 생선을 무척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가 그 독있는 뱀을 조금만 먹었어도 그 자리에서
죽었을 게 틀림없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는 더 이상 친뚜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친뚜와 함께 살던 뭇쑤리로 가서
그전에 두고 온 옷가지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자면 우선 몇 푼이라도 여비가 필요했다.
그녀는 맨 처음에 친뚜의 시집들을 펴낸 출판업자를 찾아가
친뚜가 죽었으니 그 시집들에서 나오는 돈은
그녀가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친뚜와 수도승은 매우 행복하게 살았다.
수도승은 늙었고, 세상에 책임질 일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매우 해학적이고 행복한 인물이었다.
친뚜 역시 아무 걱정이 없었다.
그러나 아직도 그의 마음 밑바닥에는 브하바니가
자리잡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는 스스로 행복해지려고 노력했으며,
자신의 고통을 밖으로 나타내지 않았다.

한번은 친뚜가 말했다.
"스님, 저와 함께 데라둔엘 다녀 오시지 않겠습니까?
제가 자라난 집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그 당시 저는 장님이었기 때문에 그곳이 어떤 모습인지 저도 한번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제 시집도 새로 출판하고 싶습니다."

수도승은 항상 어디론가 떠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자네가 살던 집을 보여 준다면 나도 내가 살던 집을 보여 주겠네.
어쩌면 자네는 내가 살던 집을 보면 나를 싫어하게 될지도 모르지.
하지만 나는 상관이 없네.
과거는 이미 지나간 것이고,
미래는 아직 아무도 모르며,
현재에 나는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수도승이니까."

그들은 데라둔으로 갔다.
그곳은 뭇쑤리 산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거리였다.
친뚜와 여러 해 동안 함께 지내던 고아원 사람들과 다른 이들은
친뚜의 눈이 정상인 것을 보고 믿을 수가 없었다.
완전히 장님이었던 친뚜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들의 이름을 알아맞추었다.
그제서야 사람들은 그가 진짜로 친뚜인 것을 인정했다.

친뚜가 원고 뭉치를 들고 출판업자를 찾아간 바로 그 날,
우연히 브하바니도 그곳에 왔다.
출판업자는 두 사람 모두를 사무실로 불러 의자에 앉게 했다.
브하바니는 친뚜를 보고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 사람은 꼭 친뚜처럼 생겼군.
그렇지만 친뚜는 완전히 장님이었는데 이 사람은 아름다운 눈을 가졌어.
나는 친뚜의 아버지를 아는데, 그는 감옥에 있고,
그에게는 다른 아들이 없어."

그리고 나서 그녀는 세상에는 닮은 얼굴이 가끔 있다고
생각하고는 친뚜에 대한 관심을 버렸다.
출판업자가 브하바니에게 돌아앉으며 말했다.

"가져 오신 원고를 좀 보여주실까요?"
그러면서 이렇게 물었다.
"이게 모두 당신의 글씨입니까?"
브하바니가 대답했다.
"그래요,모두 내 손으로 쓴 것입니다."
출판업자는 그녀가 건네 준 원고를 여기저기 훑어보고 나서 말했다.
"좋습니다.출판하겠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친뚜는 혼자서 말했다.
"목소리가 꼭 브하바니 같은데.
그래, 어쩌면 이 여자는 브하바니일지도 몰라."

그와 동시에 출판업자가 친뚜에게 돌아앉으며 말했다.
"이젠 당신이 가져온 원고를 좀 볼까요?"

그는 친뚜가 가져온 시 몇 편을 읽더니 말했다.
"대단한 시군요 ! 이 시들은 꼭 친뚜라는  위대한 시인이 쓴 시와
비슷하군요."

친뚜가 말했다.
"제가 바로 친뚜입니다.
그전에 장님이었는데, 제 아내가 뱀 요리를 해주는 바람에
그 뜨거운 김이 눈을 씻어 주어서 다시 세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출판업자는 놀라서 말했다.
"이 여자는 친뚜가 죽었으며 자기가 그의 아내,
브하바니라고 주장을 합니다.
그러면서 그의 시를 출판하겠다고 가져왔는데,
대체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군요."

그녀가 브하바니라는 애기를 듣자
친뚜는 자리에서 일어나 브하바니의 무릎으로 엎어졌다.
그는 마구 소리내어 울면서 말했다.

"브하바니,왜 내 곁을 떠났어?
당신과 함께 살 때는 장님이었어도 행복했는데.
당신이 없으니 두 눈이 보여도 진정한 사랑을 찾을 길이 없었어.
이제야 당신을 찾았군.
다시는 내 곁을 떠나지 말아 줘."

브하바니는 한편으로는 큰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친뚜에 대한 진실한 사랑을 느꼈다.
그녀의 마음 속에는 행복과 고통이 마구 엇갈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녀는 언제나 친뚜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었다.
그런데 육체적인 쾌락에 눈이 멀어 잠시 빗나갔던 것이다.

출판업자가 다시 물었다.
"어느 원고가 진짜 친뚜가 쓴 것이오?"
브하바니가 말했다.
"둘 다 입니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친뚜를 껴안았다.

"친뚜, 제가 한 짓을 잊어 주세요.
저를 용서하고 다시 받아 주세요.
이 세상에 저를 혼자 두고 떠나지 말아요."

출판업자가 말했다.
"이제 당신들은 서로를 찾았군요. 두 원고를 모두 출판하겠소."
그는 친뚜에게 훨씬 비싼 원고료를 주었다.

친뚜가 말했다.
"브하바니, 나에게는 돈이 필요 없어.
돈은 항상 당신이 관리했잖아.
어서 이 돈을 받아."

그들은 함께 친뚜가 살던 고아원으로 갔다.
수도승이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친뚜가 말했다.

"브하바니, 당신이 떠난 뒤 나는 이 스님과 함께 뭇쑤리에서 살았어."

브하바니는 그 수도승을 자세히 살펴보고 나서 말했다.
"스님께선 꼭 친뚜의 아버지 데브람을 닮으셨군요."
수도승이 말했다.
"그렇소. 내가 데브람이오.
그러나 내가 친뚜의 아버지인 것은 모르겠소.
옛날에 내 아내가 아들을 하나 낳긴 했지만,
지금은 죽은 어떤 사람이 그 아이를 데려다 키웠소."

브하바니가 말했다.
"맞습니다. 당신이 바로 친뚜의 아버지세요.
나는 옛날에 당신이 다른 죄수들과 함께 채소밭에서
일하는 것을 보았어요."

수도승이 자기의 아버지라는 소리를 듣고
친뚜는 브하바니와 함께 그의 발 아래 깊이 엎드려 절했다.
그런데 그들이 머리를 들었을 때
수도승은 저만치 달아나고 있었다.

친뚜가 말했다.
"그는 나의 아버지야.
하지만 그는 이미 세속적인 인연을 끊은 사람이야.
그는 더 이상 가족 관계에 매이고 싶어 하지 않아.
브하바니, 우리 함께 뭇쑤리로 돌아가자.
그곳에서 우리의 새 삶을 시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