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기적"이 있었던 시절,
"그 도시"에 언제 부턴가 그 아이는 나타났다.
그 아이의 본 이름은 알려지지 않아서 곧 사람들에 의해서
이름이 주어졌다.
왜냐하면 이름이 없으면 혼란이 오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그에게 지어준 이름은 " 형제자매" 였다.
그것은 이름이라기 보다는 별명 같은 것인데,
그에게는 그 별명이 매우 그럴싸해 보였다.
왜냐하면 그는 사람을 부를 때 남자면 "형제",
여자면 "자매"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따로 구별할 필요 같은 것이 없는 듯하였다.

보통의 경우에 사람들은 샛별이라든가 이슬이라든가
달님 같은 이름을 저마다 하나씩 가지고 있게 마련이다.
사람들은 그런 자기의 이름을 평생토록 잘 간직하면서,
혹은 명함에다 새겨서 요모조모 모양을 내보기도 하고,
문패 같은 것을 만들 때에도 멋진 장식으로 꾸미는가 하면,
어떻게 해야 텔레비젼이나 신문에 자기 이름을 낼 수 있을까
궁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노력을 한 결과가 성공적일 경우에
모두들 그 "이름"을 부러워하고,
심지어는 질투까지 느끼며,
본인은 또 본인대로 매우 흐뭇해 하는 법이다.
심지어 자기 이름으로는 멋진 사인이 되지 않는다면서 애를 써서
이름을 바꾸는 경우 까지 있다.
사람에게 있어서 이름이란 그렇게 소중한 것이다.

그런데 이 형제자매 군에게는 그런 이름의 구별이
별로 필요하지 않은가 보았다.
이름이라는 것이 서로 각각 달라야만 제 값을 하는 법인데
이 소년은 사람을 구별하지 않고 누구든 남자에게는 형제,
여자에게는 자매라고 불렀으며,
그랬기 때문에 그 아이에게는 마이클이나 톰이 마찬가지로
형제일 뿐이었고, 제인과 주디는 그냥 똑같이 자매일 뿐이었다.
구태여 구별할 필요가 있을 때에 그는 톰 형제님,주디 자매님 식으로 불렀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드문 일이고 그냥 형제님, 자매님이라고
부르는 게  보통이었다.

그가 언제 이 도시에 나타났는지,
또 그가 어디서 왔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만 바로 "그 골목" 앞에서 과일 행상을 하던 아주머니에 의하면,
어느 날 아침 그녀는 누더기진 옷을 입은 열 살쯤 되어 보이는
소년이 길을 찾으려는 듯 두리번거리는 것을 발견 했다는 것이다.
이 아주머니는 마음씨가 착한 부인이었으므로

그 아이에게 물었다.
"애야, 넌 누구니? 누군데 이렇게 엄마 아빠도 없이 혼자
나다니는 거냐?"

그랬더니 그 아이는 생긋 웃으며 대답했다.
"저 하늘이 우리 아빠이고, 이 땅은 우리 엄마인 걸요!"

아주머니는 참 이상한 아이도 다 보겠다 싶었지만,
상냥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참 안됐구나! 내가 사과라도 몇 개 주련?
네가 측은해 보여서 그래!"

아주머니는 이 아이를 고아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자 그 아이, 그러니까 형제자매 군은 다시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고맙습니다,자매님.
사과 형제를 제게 주신다면 고맙게 받겠어요.
하지만 저를 불쌍하게 생각해 주실 필요는 없어요."

그래서 아주머니는 이 아이가 어딘가 이상한 데가 있다고 느꼈다.

"애, 넌 참 이상한 말을 다 하는구나!
다 늙은 나에게 자매님은 또 뭐니?
그리고 사과가 네 형제라고?
게다가 너를 불쌍하게 여길 것은 없다고?"

"네 , 자매님.
제가 자매님을 자매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제가 자매님을
좋아한다는 뜻이예요.
그리고 제가 사과를 형제라고 부르는 것도
저는 사과를 좋아한다는 뜻이구요.
사실 그렇잖아요?
세상 모든 사람은 하늘과 땅의 아들딸이 아니에요?
그리고 세상의 모든 나무와 풀과 새와 동물과 돌맹이들도 다 그렇구요.
그러니 우리 모두는 서로 형제 간이고 자매간인 거잖아요?"

"글쎄, 네 말을 들어보니 그런 것 같긴 하다만......................."

마음씨 착한 아주머니는 아주 명랑하고 장난꾸러기인 데다가
자갈이 다 비치는 맑은 물같이 한없이 순수해 보이는
그 아이의 말을 너무 부정할 것은 없겠다 싶었다.
그리고 왠지는 몰라도 갑자기 그 아이가 마음에 들어 버렸다.
아주머니는 까닭 모르게 기분이 좋아져서
그 아이에게 잘 익은 큰 사과를 두 개나 주었다.
그러자 그 아이는 , " 고맙습니다, 자매님.
하지만 전 한 개면 충분해요. 안녕! 사과 형제야!" 하더니,
사과를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근데, 난 지금 배가 고파. 그러니 사과 형제가 나를 좀 도와주겠어?
응? 좋다구? 그렇지만 너무 아프지 않게 먹어 달라구?
그래, 그래, 잘 알았어, 사과 형제야."

그 아이는 사과를 한입 달게 베어 물었다.
아주머니는 그것이 너무도 재미있게 느껴졌다.

"넌 사과하고도 말을 하니?
사과가 네 말을 들을 수가 있어?"
" 그럼요. 누구하고도 애기할 수있지요.
왜 안된단 말이에요?"

그 아이는 도리어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아주머니를 쳐다보았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형제자매이듯이 세상 모든 친구들도
다 형제자매니까요.
돌 형제, 참나무 형제, 구름 자매, 물 자매, 사슴 형제, 종달새 자매
백합 자매.................."

"그래! 그만해도 알겠다 !"

아주머니는 말했다.
그리고 아주머니는 기분좋은 미소를 지었다.
훗날 아주머니는 그 아이와의 만남은 왠지 모르게 흐뭇한 기분을
갖게 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그렇게 이 도시에 나타난 형제자매 군은 그때부터 "상냥함"과 "형제애"를
꽃가루처럼 뿌리고 다녔다.
누구든 이 아이와 함께 있거나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 기분이 흐뭇해지고
하루 종일 자꾸만 웃음이 새어 나오게 마련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형제자매 군에게 이번에는
"행복을 주는 아이"라는 이름을 새로 하나 더 붙여 주게 되었다.

그런데 이 도시에는 새로운 친구와는 달리 자기의 이름에 대해서
아주 과민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바로 이 도시의 종교 지도자이신 "엄격한 주교님" 이었다.
이 주교님은 매우 해박한 신학적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커다란 머리는,  경전에 대한 주석과 해설로 머리카락 하나 들어갈
틈도 없이 꽉 채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의 행동은 그야말로 자로 잰 듯이 엄격하였다.
그는 사람들이 허튼 짓을 하는 것이나,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것은 도저히 참아내지 못했다.
그는 가끔씩 자기의 관할 구역인 이 도시를 돌아보곤 했다.
엄격하신 주교님이 시내를 돈다는 소문이 나자마자
상점들은 곧바로 문을 내려 철시를 해버리고,
거의 모든 사람들은 숨어 버려서 길거리에는 다니는 사람 하나 없이
썰렁해진다.
왜냐하면 엄격하신 주교님의 눈에 띄게 되면  칭찬을 받기보다는
불호령이나 떨어질 게 뻔하기 때문이다.

주교님은 종교 지도자였을 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생사여탈권까지
쥐고 있는, 명실상부한 이 도시의 "지배자" 로서 시장이자 법관이기도 했다.
그런 무서운 분의 눈에 띄어서 이익될 것은 별로 없었다.
세상을 살다 보면 가끔씩은 하느님의 뜻에 어긋나는 일을
안할 수는 없는 법인데,
주교님은 대번에 그 사람이 뭘 잘못했는지 간파해 버리는 것이었다.

"이번에 괜찮았어 ?"
"그래, 자네도 아무 일 없었고 ?"
주교님의 시내 순시 뒤에 사람들이 " 후유!" 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며 주고받는 인사였다.

"그런데 빵장수 요셉은 미처 가게 문을 닫지 못했다가
보통 곤욕을 치른 게 아니었대 ! "
"왜?"
"글쎄 주교님이 요셉에게 오시더니 물으시더라는 거야.
"자네 지난 주에 헌금을 했겠지 ?"
그러자 천하의 주교님 앞에서 어떻게 거짓말을 할 수 있겠어.
요셉이 부들부들 떨면서
"죽을 죄를 졌습니다, 주교님.
제가 그만 술을 마시느라고 아내가 준 돈에서 반을 떼어서........"


그러자 주교님이 벽력같이 소리쳤다네.
"그만! 자넨 그 죄가 얼마나 큰 줄 아나?
"모릅니다.........." 순진한 요셉이 대답했지.
"그 죄의 정확한 값은 연옥(煉獄)의 뜨거운 유황불에
48시간 27분 동안 맨몸으로 서 있어야만 되는 것이야!"

저울같이 정확하신 주교님이 말씀하셨지.
그래서 요셉은 부들부들 떨며 용서를 빌었는데
마침내 주교님은 판결을 내리신 거야.
"자넨 오늘부터 1주일 동안 성벽 위 파수대에 올라가서
혹시 불순분자가 이 도시로 들어오는지를 감시하게.
알겠나 ?
이런 형편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주교님을 매우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주교님이 구역 사찰을 할 때에는  모두들
숨었을 뿐만 아니라,
나중에는 주교님의 관저에서 일하던 사람들조차
이 핑게 저 핑게를 대고 빠져나가 버렸다.
주교님은 더 많은 급료를 주겠다고 약속을 하고
새로 사람들을 채용했으나 그들도 견디지 못하고
떠나 버렸으므로 주교님은 매우 기분이 상해 있는 참이었다.
이럴 때 문제의 그 소년이 주교의 눈에 띄었다.


그날도 주교는 자기의 구역인 시내의 중심가를 위엄에 찬
걸음걸이로 당당하게 걸으면서 자신의 높은 지위를
한껏 즐기고 있었다.
사람들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가끔씩 개나 고양이들이 적적한 큰 길을 가로지르거나
야옹야옹 울면서 담장 위에서 밑을 내려다보고 있었고
혹 피할 시간이 없었던 사람이 있더라도 어서 주교가 지나가
주기를 바라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때 주교님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는 우리의 소년이
휘파람소리를 내면서 유쾌한 모습으로 그 앞에 나타났던 것이다.
가게 문을 내리고 창틈으로 주교님의 거동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그 순간 아연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저 철부지 소년에게 어떤 불상사가 일어날 것인가.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두 손을 모았다.

"저 무례한 놈이 누군가?"
당장에 주교님의 호령이 떨어졌다.
그리고 그 호령이 떨어지자마자  주교님을 모시고 있던 시종 두 사람이
달려가 소년을 냉큼 잡아서 주교님 앞에 대령시켰다.

"형제님들! 도대체 무슨 일이죠?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저질렀던가요?"
소년이 소리쳤지만 시종들은 들은 체도 안했다.

"조용히 해! 주교님 앞에서 이 무슨 앙탈이냐?"
"주교님이라구요?"
"그래! 이분이 거룩하신 하느님의 뜻을 집행하시는 주교님이시니라!"

그러자 흐뭇해진 주교는 "으흠!" 하고 헛기침을 하면서 누더기를
입은 어린 소년을 내려다보았다.
소년이 기뻐하며 말했다.

"잘 됐네요!  주교 형제님께서는 하느님의 뜻을 따르시는 분이시라니
얼마나 다행이에요?
 주교 형제님!  저는 지금 마땅한 일거리가 없어요.
이 아우에게 좋은 일자리를 마련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뭐? 주교님을 형제라고?"

시종들이 일시에 소리쳤고, 놀란 주교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런데도 소년은 연방 종알댔다.

"그렇지 않구요? 우리들은 모두 한 형제니까요!"
"그래, 네 말이 맞긴 맞지!"

주교님은 이 철부지를 한껏 비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너는 지금 일자리를 찾고 있다고 했겠다?"
"네,주교 형제님!"

아무 것도 모르는 순진한 소년이 대답하자
주교는 당장에 명령했다.

"저놈에게 마굿간지기를 시키도록 해라 !
당나귀 형제들에게 잘 봉사할 수 있도록!
건방진 놈 같으니라구 !"

이렇게 명령을 하고 나서 주교님은 잔뜩 부은 얼굴로 자기의
관저로 되돌아가 버렸다.
한편 소년은,  "감사합니다,형제님!" 하고 진심으로 외쳤다.
그러자  시종 한 사람이 아무 것도 모르는 소년을
측은하게 여기고 이렇게 일러주었다.

"애야, 너도 너무 했지 뭐니?
지엄하신 주교님에게 형제라니 될 말이냐?
그리고 너는 당나귀 돌보는 일이 어떤 일인지 알고나 있는거냐?
너는 하루 온종일 당나귀들의 똥오줌이나 치워야 할텐데,
그게 뭐 그리 좋은 일거리라고 그렇게 환호를
하는 거냐?"

"아무래도 좋아요, 형제님! 저는 무엇보다도 당나귀가 좋으니까요!"

"글쎄 당나귀가 아니고 똥과 오줌이라니까!"

그러자 소년은 명랑하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똥과 오줌이라구요?
왜 어때서요?
개네들도 다 내 형제고 자매가 아니겠어요?"

그 말에는 시종들도 두 눈이 휘둥그래지면서 입을 딱 벌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해서 우리의 형제자매 군은 당나귀 우리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 소년은 당나귀 우리에서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일을 맡게 되었다.
그렇지만 소년은 약간 이마를 찌푸리고 코를 씰룩 거렸을 뿐
별로 싫어하는 기색은 없었다.
오히려 며칠이 지난 뒤 당나귀 우리의 감독관은
이상한 장면까지 보게 되었다.

때는 늦은 저녁이었는데,
감독관은 우리 안에서 들려오는 웅얼웅얼 하는 소리에 귀를
곤두세우고 살며시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그 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새로 들어온 소년이었다.
소년은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은 채 기도를
올리는 중이었는데 그 기도라는 게 참으로
괴상한 것이었다.

"감사해요, 하느님.
오늘도 제 할 일을 다 마쳤으니까 기도를 드리겠어요.
하느님, 저는 하느님께서도 저의 당나귀 형제자매들처럼
건강하실 줄 믿어요.
저의 당나귀 형재자매들은 참 씩씩하고 건강하거든요.
하느님께서도 그러시죠 ?
분명히 그러실 거예요.
그렇지 않으심 어떻게 이 세상 수많은 사람들의
소원을 다 들어주실 수가 있겠어요 ?
그리고 수도 셀 수 없이 많은 당나귀들의 소원도요 !

참 !
그러고 보니 하느님께서도 당나귀 형제들처럼
지저분한 곳에 사실지도 모르겠어요.
그렇담 여간 큰일이 아닌데요 !
하느님, 혹 하느님께서는 제가 필요하지 않으세요 ?
전 이제 마굿간 치우는 일에는 제법이랍니다.
그러니 혹 하느님 사시는 곳이 지저분해졌거나,
화장실을 치우실 일이 있으실 땐 저를 부르시도록 해요.
그런 일을 천사님 들에게 시킨다는 건 정말이지
지나치지 뭐예요 ?
아무리 같은 형제자매라고는 해도 당나귀의 똥오줌은
역시 처치 곤란인 점이 있어요.
하느님, 하늘 나라에도 변기가 있나요 ?
화장실이 있나요 ?
예전에는 그런 생각을 못했었지만 이곳에서
그런 일을 하다 보니 하늘 나라에도 그런 게 꼭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왜냐하면 그런 게 있음으로써 세상이 왜 아름다운 것인지
알게 되니까요 !

하느님,
그리고 제 소원이 하나 있어요.
제가 만약에 죽고 나서 혹시라도 말이지요,
혹시라도 하느님 나라에 가게 된다면 여기 있는
당나귀 형제자매들과 같이 가게 해주세요.
꼭요, 하느님.
저는 이 형제자매들과 제법 정이 들었거든요 !
사실 하늘 나라에도 당나귀는 필요할 게 아니에요 ? "

감독관은 소년의 이런 괴상한 기도에 기겁을 했다.
그는 평생토록 이렇게 기도하는 사람은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감독관은 소년의 기도를 들으면서
한편으로는 이 아이가 하느님과 매우 가까운
사이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이 아이야말로 하느님을 모독하는 크나큰 죄인인
것으로도 생각되었다.
아무튼 평생을 동물 관리에만 바쳐온 이 늙은이는
이것이 자기의 머리로써는 대답을 찾기 어려운
문제임을  자각했다.
그래서 그는 이 문제를 황급히 "위"에다 보고하였다.

이 해괴한 내용의 보고는 몇 사람의 "위"를 거쳐서
즉시 주교님에게 전달되었다.
주교님은 아연실색하였다.
주교님은 이런 무식하고 신성모독적인 기도를
올리는 사람이 자기의 관저 안에 있다는 사실에
대해 경악햇다.
머지 않아 하느님의 진노가 내리리라고 생각했다.

"당장 그 녀석을 불러오너라 !"

주교님의 명령 한마디에,
가엾은 소년은 아무 것도 모른 채 끌려왔다.
주교님은 소년을 심문하였고,
곧 보고가 사실 그대로임을 알았다.
그는 진노하였다.

"네 이놈 !
아무리 배운 바가 없기로서니 그런 기도가 어디 있느냐 ?
뭐 하늘 나라에도 화장실이 있느냐고 ?
하느님이 당나귀처럼 건강 하시다고 ?
네가 하늘 나라의 화장실을 치워드리겠다고 ?
내 참 기가 막혀서 !
뭐 ? 그리고 또 당나귀들과 함께 천국에 가고 싶다고 ?

네 이놈!
너는 그런 말들이 얼마나 하느님을 진노케 하는 말인 줄 알고나 있느냐 ?
그러자  소년은 알 수 없다는 듯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것은 "알 수 없다"는 뜻이었다.

"저 고약한 놈 좀 보아라 !
감히 무엄하게도 고개를 가로젓다니 !
여봐라 ! 저 놈을 매우 쳐라 !"

시종들이 우루루 달려들어서 소년을 형틀에 묶기 시작했다.
소년이 말했다.

"주교 형제님,  하늘 나라에 화장실이 없다는 것이
어디에 씌어 있는지요 ? "
"뭐라고 ? 저놈이 지금 무슨 말을 하느냐 ? "
" 주교 형제님, 그런 말은 어떤 경전에 씌어 있습니까 ? "
"........................."
주교는 대답을 못했다.
모두들 숨을 죽이고 있는데, 다시 소년이 말했다.

"주교 형제님,
저는 하늘 나라가 매우 좋은 것으로만 충만된 곳일 거라고
믿어요. 그렇잖아요 ? "
"그래,그건 맞는 말이다."
"그런데 저는 당나귀들을 매우 좋아한답니다.
그러니 그곳에도 당나귀가 있어야 할 게 아녜요 ?
사실 하늘 나라에 가신 분들 중에 당나귀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 않겠어요 ?
그리고 그분들에게는 당나귀가 없는 하늘 나라는
이미 천국이 아닐 거구요 ?
안 그래요 ?

".........................."

"그리고 , 거기엔 모든 것이 다 있을 거예요.
이 세상에 잇는 모든 것이요 !
당나귀뿐만이 아니라, 소.염소.닭도,
지렁이.매미.방아개비도, 해.달.별들도,
그리고 물론 주교 형제님도요 !

이 마지막 말이 주교님의 마음을 조금 풀어 주었다.
그리고 빠져나갈 길이 없던 주교님의 숨통을
터주는 것이기도 했다.
주교님이 말했다.

"저 맹랑한 녀석에게 다른 일을 시켜야겠다.
제대로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서 어서 내보내도록 해라 !
다시는 보기도 싫으니까 ! "

그래서 형제자매 군은 간신히 매맞는 것을 모면하고
풀려나올 수가 있었다.
그 대신 그는 주교 보좌역으로부터 까다로운 기도법을
배우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리고 그에게는 새로운 일거리가 주어졌다.

그것은 아침마다 성 밖에서 신선한 우유를 받아다가 그것을
주교님께 바치는 일이었다.
주교님은 건강에 매우 신경을 쓰시는 분이셨다.
그랬기 때문에 금방 받아낸 신선한 우유가 아니면 마시지를 않았다.

아무튼 이 소년으로서는 별 차이가 없는 일이었다.
소년에게 있어서 세상은 모두 그대로 하늘 나라였고,
세상의 모든 것들은 다 형제자매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얼마 뒤에 또 문제가 생겼다.
주교님은 매일 새벽 다섯시 반에 어김없이 관저 앞에 나와서
바구니에 담긴 우유를 꺼내어 기분좋게 마시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제 시간에 우유가 도착하지 않은 것을
알자 주교님은 당장에 소년을 호출했다.
주교님으로서는 지난번 체면이 손상된 일로 해서
내심 심기가 불편한 참이었고,
그래서 기회만 있으면 "그 꼬마 놈"을 혼내주리라
벼르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가차없이 소년을 꾸짖었다.

소년이 대답했다.
"주교 형제님. 그건 제 잘못이 아닙니다."
"뭐라고 ? 그럼 무슨 이유라도 있단 말이냐 ? "
"예,주교 형제님, 간밤에 비가 많이 내려서
강물이 불었습니다.
그 때문에 뱃사공 형제가 제때에 와주시지
않아서 그만................"

"네 이놈 ! "
주교는 소리쳤다.
"하느님을 따르는 사람에게 못 이룰 일이란 없는 법이니라 !
너는 네 자신이 제법 하느님과 가깝고 
이 세상 모든 것과 형제자매라고 자부하면서도
그까짓 강물 하나 제때에 마음대로 건널 수 없었단 말이냐?"

그 말을 듣자 뜻밖에도 소년이 기뻐하며 외쳤다.
"감사합니다,주교 형제님 !
제가 그걸 깜박 잊고 있었군요 ! "

"무슨 말이냐 ? "

"내일부터는 절대로 우유 배달이 늦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 "

과연 그랬다.
이튿날부터 우유는 1분도 틀리지 않고 제시간에
배달 되었다.
그러기를 한 달이 되고 두 달이 지나도 변함이 없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주교님이 슬슬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사실 주교님으로서는
"하느님을 따르는 사람에게 못 이룰 일이란 없다 "고
큰소리를 쳤으면서도  그에 대해서 내심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주교님은 궁금증을 이길 수가 없었다.
주교님의 마음은 사실 갈증에 가득 차 있었다.
주교님은 온 나라에 잘 알려진 신학의 대가였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주교님이 밝힌
"하느님과 하늘 나라의 축복 " 에 대해서
배우고 있었다.
그 분이 쓰신 책은 깊은 영감이 넘치는 책이어서
크나큰 존중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그 책을 읽은 많은 사람들이 크나큰 축복을
받고 있기도 하였다.

그러나 정작 주교님 자신의 마음에는 하느님의 축복이
내리지를 않앗다.
그래도 남들 앞에 그런 눈치를 보일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 때문에 주교님의 마음은 속으로 크게
병들어 있었다.
그러던 차에 주교님 앞에 이 이상한 소년이 나타난 것이다.
주교님은 이 소년에게서 말할 수 없는
신비를 감지하고 잇었다.

지난번 "당나귀 사건" 때만 해도
주교님은 내심 소년에게 한방 먹은 것으로 치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 "우유 사건"의 경우에도
소년이  " 제가 그걸 깜박 잊고 잇었군요 ! "라고
말하며  기쁜 얼굴로 눈이 빛나는 것을 본 순간,
이번에도 내가 졌다고 직감적으로 느꼈던 것이다.
소년의 때없는 표정과 모든 사물에 대한 거짓없는
신뢰가 지식과 엄격함 속에 파묻힌 이 노인를
움직였던 것이다.

주교님은 드디어 남모르게 변장을 하고
밤중에 관저를 나왔다.
그것은 주교님 평생에 처음 해보는 고생이었다.
주교님은 남몰래  관저를 빠져나와 성밖으로 나갔고
다시 거기서도 십리 길을 걸어 강에 도착했다.
그리고는 잠든 사공에게 값을 네 배나 치르고
겨우 강을 건넜다.
거기에 주교님에게 우유를 배달해 주는 목장이
있었던 것이다.
주교님의 몸은 찬 밤공기에 휩싸이자 심한 오한으로
떨렸다.
그러나 포기할 수가 없엇다.
무언지 모르게 소년을 감싸고 있는 신비를
캐보아야 했다.
그러지 않고는 자기를 평생토록 괴롭혀 온
이 갈증을 풀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윽고 새벽이 되었다.
그러자 목장 안에서 희미한 그림자 하나가
걸어나왔다.
바로 문제의 그 소년이었다.
소년은 먼저 하늘을 바라보며 아직도 희미하게
빛나고 있는 별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 ! 별 형제님들 ! 별 자매님들 ! "

그리고는 우리로 들어가면서 이번에는
암소들에게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안녕 ! 암소 자매들 ! 잘 잤어 ? "

소년은 암소에게 다가가자 조그만 등불을 밝히더니
한 암소에게서 젖을 짜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그 젖을 거르면서 연신 즐거운 콧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다.
문제는 바로 강가에 이르렀을 때였다.
소년은 우유병을 들고 강가에 이르자
명랑하고 즐거운 목소리로 말하는 것이었다.

"안녕 ! 강물 형제들 ! 자, 오늘도 날 저편에다 건네 주겠어 ?
잘 부탁해 ! "

그리고는 강물을 성큼 걸어 들어갔다.
그런데 이것이 웬일인가 !
소년은 땅 위를 걷듯 강물 위를 걸어가는 것이 아니가 !

"아니, 이럴 수가 ! "

주교의 두 눈이 휘둥그래진 것은 말할 나위도 없는 일이다.
갈대밭에 숨어서 그 모양을 지켜보던 주교는
황급하게 뛰어나와 소년의 뒤를 따랐다.

"애야 , 나도 건네 주려무나 ! "

그때 소년은 강을 막 다 건넌 참이었다.
소년이 쳐다보니 희끄므레한 어둠 속으로
주교님이  물 위를 첨벙거리며 건너오고 있었다.

"주교 형제님, 어서 건너오세요 !
그런데 이 새벽에 웬일이신지요 ? "

그러나 그 순간 주교님은 깜짝 놀랐다.
왜냐하면 주교님은 자기까지도 엉겹결에
물 위를 걷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주교님이  자신의 기적을  "알아버린" 그 순간,
주교님은 그만 물 속으로  빠져 들어가 버렸다.

"애야, 날 좀 구해 주려무나 ! "

주교님은 어푸어푸 외쳤고,
번개같이 달려온 소년이 주교님을 구했다.

"주교님, 큰일날 뻔하셨어요 ! "

소년이 진심으로 말했다.
그러나 지친 주교님은 숨을 헐떡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의 머리속은 이제 엉망으로 헝클어져 있었고,
그의 가슴은 말할 수 없는 흥분에
쿵쾅거리고 있었다.
이윽고 주교님의 두 눈에서 반짝이는 물방울이 흘렀다.
그것은 주교님으로서는 무려 이십 칠 년 만에
처음 흘려 보는 감동의 눈물이었다.

"애야, 너는 어떻게 그런 기적이 가능했느냐 ?
내 진심으로 네게  부탁하겠다.
그 비밀을 가르쳐 주겠니 ? "

주교님이 진심으로 물었다.
그러자 소년이 말했다.

" 전 세상 모든 것을 형제자매로 믿어요.
그리고 제가 그럴 수 있었던 건 어떤 위대하신 분이
쓰신 책의 첫 페이지를 읽고 나서부터였걸랑요 ! "

"그래 ? 그게 무슨 책이냐 ?
내가 당장에 그 책을 구해서 읽도록 하겠다 ! "

"네, 그 책 이름은 ' 하느님과 하느님 나라의 축복' 이에요."

그 말에 주교님은 넋을 잃고 멍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그 책은 바로 자신이 쓴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윽고 주교님은 큰소리로 통곡하기 시작했다.
주교님은 자신이 얼마나 가엾은  존재인지를
진실로 느꼈던 것이다.

눈물이 주교님의 얼굴을 온통 적신 그때였다.
주교님은 갑자기 백합 향기가 주위에 진동하는 것을 느꼈다.
순결한 기운이 바람처럼 일렁거렸고,
두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었다.
온누리가 거룩한 광휘에 휩싸이고
문득 홀로만이 딴 세상으로 훌쩍 옮겨온 듯한 아득함 속에
있을 때,
주교님의 가슴속에는 언어가 아닌 어떤 "말씀 "이
가득 채워지고 있었다.

소년은 이미 거기에 없었다...............

그 뒤로 그 도시에서는 형제자매 군의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전설에 의하면 다른 도시에서 가끔씩
그가 나타나곤 했다고 한다.
물론 , 그때에는 그 모습과 이름이 전과 달라지긴 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