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의 맛은 씁쓸하다지만 실연의 맛은 쓰다기보다
탕약을 뒤집어쓴 것 같아서 후회와 고통이 동시에 엄습해 온다.
이 맛은 체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이제껏 서로 사랑했던 사람끼리 서로 상처를 주고 헤어져야하는
슬픔은 정말 견디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연애하는 사람은 언젠가는 이런 경우에 떨어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운명이다.
실연하고 싶지 않으면 당초부터 연애를 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그러나 그런 줄 알면서도 연애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또한 사람이니 어찌 하랴.

인생의 현실은 어느 것이나 자기 뜻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다.
사는 것, 늙는 것 , 병드는 것, 죽는 것이 다 고(苦)이며
어느 것 하나 그렇지 않은 것이 없다.
이것을 생노병사(生老病死)의 고(苦)라 한다.
또 원증회고(怨增會苦=미운 사람을 만나지 않을 수 없는 고통)나,
구하는 것을 얻을 수 없는 데서 오는 고통인 구부득고(求不得苦),
그리고 사랑하는 자와 헤어져야만 하는 애별리고(愛別離苦)와
욕을 채울 수 없는 오온성고(五蘊盛苦=慾이 盛하는 苦),
이 네가지의 고는 우리 인생에 항상 붙어 다니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이것을 사고팔고(四苦八苦)라고 하는데,
그 근원을 캐보면 이것들이 모두 자기의 욕망을 충족시키려는
이기심에서 오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연애하는 경우에는 자기가 반한 상대방을 이상화한 나머지
전후사정을 돌아보지 않고 독점하려 하거나 자기를 희생해서라도
상대방에게 심신을 다 바쳐버리려하거나  하게 되기 십상이다.
이런 자기확대(自己擴大)나 자기희생 속으로 분극화(分極化)하는
그 속에  사랑하는 사람끼리 서로 상처를 입히고 좌절해 버릴
가능성의 소지가 숨어있는 것이다.

연애가 우리 인생을 장미빛으로 물들게 하고 정화(淨化)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와 동시에 이의 변색과 배반의 가능성도 각오해
두지 않으면 않된다.
동서고금의 많은 연애소설이 거의 다 그렇듯이
모리악의 "데레스 데케루" 나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 " 만 보아도
연애의 마지막은 비극적 결말을 거두는 것이다.

연애를 할 때 상대방에게 반하는 사랑 비슷한 감정과,
참으로 상대방을 사랑하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지만
이 차이를 알지 못하고 "반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을 혼동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 에서는
데미트리가  사랑과 질투와 증오의 불꽃으로 가득찬 가슴을 두들기면서
동생 아르샤에게
 "반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은 같은 것이 아니다.
반한다는 것은 증오하면서도 할 수 있는 일이니까 말이다 " 하고
소리치고 있다.
이처럼 사람은 반하기는 잘 하지만 사랑할 줄은 모르기 쉽게 되어 있는 것이다.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은 실연을 했다" 고 말하는 사람은 많은데
그 실연이 과연 상대방을 참으로 사랑한 끝에 맛보는 실연인지
어떤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불란서의 생 떽쥐베리가 "인간의 대지"에서
"정말로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가 서로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서로 함께 같은 방향을 올려다 보는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참사랑이란 공통의 목적 또는 가치를 향해서 서로 노력할 수 있는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거기를 향해서 비약하고
모든 것을 거기 걸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