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때 한 나그네가 황야를 터덜터덜 걷고 있을 때
갑자기 뒤에서 굉장한 소리를 내면서 코끼리 한 마리가
미친듯이 쫓아왔다.
너무 무서워 도망치다가 오래 된 우물이 있어
겨우 거기 늘어져 있는 나무줄기를 잡고 그 밑으로 피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우물 밑에는 독사 한 마리가 꿈틀거리고 있고
사방에서도 독사 네 마리가 혀를 널름거리며
노리고 있는게 아닌가.

나그네는 전신에 소름이 끼쳤다.
위를 쳐다보니 또 흰 쥐와 검은 쥐가 교대로 생명줄인 나무줄기를
열심히 갉아먹고 있었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나그네의 입에 달디단 꿀이 한 방울씩 떨어져 들어오는 것이다.
그는 경황이 없는 중에서도 그 꿀을 맛있게 먹었다.
살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도 순간의 일.
벌집에서 벌들이 쏟아져 나와 나그네의 전신을 쏘았다.
너무 아파 몸부림치면서 나무줄기에 달라붙었으나 어느 틈엔지
번지기 시작한 들불이 나무줄기를 태워 나그네의 운명은
풍전등화(風前燈火)같이 되고 말았다.


이 이야기는 석가모니께서 인간의 운명을 비유로써 말씀하신
것으로서 잡보장경(雜寶藏經)이라는 불전(佛典)에 실려있다.
황야는 헤매임(迷妄)의 세계로
나그네는 우리 자신을 이름이다.
미친 코끼리의 날뛰는 모습은 무상(無常)을 의미하며
우물 속은 인간세계를 의미한다.
또 나무줄기는 인간의 생명이다.
우물 밑에 있는 독사는 죽음,
네 마리의 독사는 우리의 육신을 구성하고 있는
네가지 요소 지수화풍(地水火風),
그리고 흰 쥐와 검은 쥐는 낮과 밤(時間),
꿀은 쾌락, 꿀벌은 우리의 잘못된 생각,
들불은 병과 늙음에 비유함이다.

이와 같이 우리는 매일 매일 무상의 바람에 쫓기고
미망과 번뇌 때문에 괴로와 하며 병과 노쇠에 의해 드디어는
독사(죽음)의 입에 빨려 들어가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해서 자기 인생을 모두 숙명으로 돌리고
오직 덧없이 죽음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인간의 일생이란 참으로 덧없는 것이어서 아무리 몸부림 쳐보아도
겨우 7,80년 밖에 살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 일생을 어떻게 해서든지 후회없는 것으로 만들려고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더욱 덧없이 지나가 버린다.


손으로 집은 모레가 마른 손가락 사이로
흘러나가 버리는 것처럼
시간이 나로부터 흘러나가 버린다.
얼마 남지 않는 귀중한 시간이.

이 말은 고견순(高見純)의 만년의 시집 "죽음의 심연에서" 에 있는
것인데 확실히 우리는 느끼지 못하면서 일각일각 자기의
죽음으로 다가서고 있다.
이 일생이란  울어도 웃어도 단 한번 뿐인 것인데
어떻게 하잘 것 없는 일에 몸을 소모 시킬 수 있을 것인가 .
자전(紫田)도  "사라져가는 우리들의 나날" 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하늘을 쳐다보면 구름이 흘러가고 있지요 ?
지금까지 빛나고 있던 별이 스러지면 그 곁에서 다른 별이
빛나기 시작합니다.
나는 아 , 저것이 사람의 목숨인 것이다라는 감상적인 생각을
지워버릴 수 없었어요.
그리고 저 별이 스러지는 것처럼 목숨이 스러지는 순간,
사람은 대체 무엇을 생각해내는 것일까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까지 감상적으로 될 필요는 없지만,
자기의 지금의 사는 양식을 반성하고
얼마 남지 않은 나날을 충실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한층 더 노력해야 되지 않겠는가.